[시애틀 수필-안문자] 출발점
- 21-03-08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출발점
책상을 정리하다 멈칫했다. 접어진 메모지에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라고 쓰여 있다. 종이를 버리지 못하고 상념에 빠진다.
지난해, 힘든 사계절을 겪는 동안 끝없는 이별을 보았고 지금도 그 아픔은 이어진다. 그건 지구 건너편에서 7.2도의 지진으로 숱한 사상자가 났고, 또 다른 곳에서 기아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는 많은 깨달음을 주고도 아직 충분치 않다는 듯 거침없는 기세로 70억 인구의 요람 지구촌을 흔들고 있다. 땅이 고열로 신음하고 바다가 해일로 몸을 뒤척인다, 그만큼 지구의 몸살은 깊고 위중하다. 어느 누가 내 책임은 아니라고 ‘손을 씻을’수 있을까. 비닐봉지를 아무데나 버렸고, 음식 찌꺼기를 강물에 흘려보냈다. 아름다운 지구에 병균을 제공한 공범을 면제받기 어려울 거다.
백신을 만나기 위해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노년의 그늘진 얼굴들. 끝이 안 보이는 펜데믹은 사회 전반에 암울함을 던지고 있는 중에 경제는 내리막을 달리고 서민 생활을 불안에 떨게 한다. 예기치 못했던 일상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마주하며 소박한 인간다운 삶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작가인 S교수는 한 중소기업의 사장으로부터 특강을 부탁받았다. ‘육 개월 동안 월급을 주지 못했습니다. 아주 작은 회사예요. 연말 보너스를 이 특강으로 주려고요. 강사료는 20만원밖에…’ 사장의 더듬대던 말끝은 울먹임 때문에 흐려졌다. 가슴이 쿵 내려앉은 여성 작가는 ‘네, 갈게요. 가고말고요.’ 흔쾌히 허락했다.
강사는 사장과 30여 명의 회사원들을 대하자 왈칵, 목이 메었다. 착한 아이 얼굴 같은 청년들이 온기가 없는 추운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시작된 강의는 참을 수 없이 솟구치는 눈물 때문에 잘 이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회사가 어디 한둘이랴. 강사는 마치 자신의 동생들이나 아들딸에게 하듯 깊은 사랑으로 말을 이어갔다. 도산을 앞둔 회사의 젊은 사장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싶어 그의 모든 지혜를 동원했고 격려의 말을 찾아 열심히 전달했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용기를 잃지 말라.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말라. 고난과 역경은 지나가는 것이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진리,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희망을 만들어 갔던 자신을 진솔하게 내보였다. 작가는 뜨거운 가슴으로 외쳤다. 희망은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 내 안에 잠자던 혼을 깨어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작가의 강렬한 음성에는 굳은 의지가 배어 있었다. 끝인 듯 보이는 바로 그곳이 새로운 출발점이다. 새로운 출발점!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직원들의 눈도 함께 빛나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강사는 20만원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터널을 건너온 지난 세월, 고통과 슬픔으로 범벅이었던 젊은 날의 고백인 책을 꺼냈다.
악몽을 이기고 새로운 생의 기쁨을 갖게 되었다는 자전적 수필집 백 권을 선물로 증정했다. 희망과 꿈이 박살나고 어른거리던 죽음의 그림자를 밟고 일어선 자신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긴 책이다. 수없이 초청되었던 강연이지만 강사료를 물리치고 선물을 내민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강사료와 비교할 수 없는 값진 소득이었고 보람과 기쁨으로 뿌듯했다.
강의가 끝나고 그들은 떡과 귤, 오징어 몇 마리를 놓고 소주 파티를 했다. 사장이 먼저 떨리는 목소리로 잔을 들고 외쳤다. ‘내 힘들다!’그러자 붉어진 눈으로 직원들이 소리쳤다. ‘다들 힘내!’용기를 주고받으며 각오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강사는 뭉클한 마음을 달래며 끝까지 그들과 함께했다. 그날의 눈물겨웠던 분위기에서 그들의 결의와 희망이 가슴으로 전해왔다. 그는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보너스대신 희망의 강의를 들었고 고통과 슬픔의 언덕을 넘어 승리한 기적의 삶이 기록된 책을 받았으니 그들은 용기를 얻었으리라. 사장과 직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이 난세를 뚫고 나간다면 오래지 않아 오뚝이처럼 일어서리라는 확신이 든다.
시련을 오히려 축복으로 역전시키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절망은 없다, 이쪽 문이 닫히면 저쪽 문을 열어주고 길이 없는 곳엔 길을 만들어가는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것이다.
기업이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고, 상업이란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의를 추구하는 것이 더 귀하다고 말한 어느 거상이 생각난다. 이 회사는 당장 이문을 남기지 못했지만, 사람을 남기는 회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KAC, 한인서비스날 맞아 대전정 청소했다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1)
- [서북미 좋은 시-오인정] 복수초
- 한국 아이돌그룹, 시애틀 매리너스 경기장서 시구한다
- ‘인기짱’시애틀영사관 국적ㆍ병역설명회 개최…“선착순 접수”
- 시애틀과 대전 자매결연 35년 교류확대 추진한다
- “킹카운티 도서관 공청회에 참석하세요”
- 전북자치도, 시애틀 경제사절단 대상 투자 설명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20일 토요정기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0일 토요산행
- 한인운영 더블트리 호텔서 경찰총격 1명 사망
- 영오션 시애틀 한인들에게 한국산김치 판매 시작
- 시애틀, 벨뷰, 부산시장이 만났다
- 워싱턴주 체육회 기금마련 골프대회
- 시애틀태권도 대부 故윤학덕 회장 추모식 열린다
- “워싱턴주, 카운티, 시정부납품 원하는 한인분들 오세요”
- 시애틀한인회, 상공인과 대학학비보조 관련 세미나 연다
- 세월호참사 10주기, 시애틀서 아픔을 예술로 승화(+화보)
- 스노퀄미 역사적 상가건물 화재에 한인 아이스크림 집도 불타
- 한국 중진공과 시애틀경제개발공사 'K스타트업 네트워킹'개최
- 브루스 해럴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초대했다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지사 후보 세미 버드, 공화당 공식 지지따냈지만
- 골드만삭스 "소비자 지출 호조…아마존주식 '매수'를"
- 시애틀 비지니스 시작하기에 얼마나 좋을까?
- 나이키 비용절감 위해 오리건 비버튼 본사직원 740명 해고
- 타코마 할머니 106살 생일잔치...장수비결 물어보니?
- 벨뷰 경전철 이번 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운항시작
- 시애틀시 24개 ‘마을센터’ 조성추진 여론 수렴한다
- 워싱턴주 다용량 탄창 금지법 계속 유효할까?
- 스타벅스, 4년 걸려 개발한 '일회용 컵'선보여
- 테슬라 미국서 모델Y 등 가격 2,000달러씩 인하
- <속보> 한인운영 더블트리 호텔 총격사건 동영상 공개돼
- 문제됐던 에버렛 바리스타들, 다시 비키니 입는다
- 시애틀지역 세입자 "1년새 렌트 또 올랐다"
뉴스포커스
- 의협 "5월이면 우리가 경험 못한 대한민국 경험할 것"
- '오송참사 원인' 부실 제방공사 감리단장 징역 6년 구형
- 김건희 여사, 정상외교서도 비공개…영수회담으로 '정상화' 출구 찾을까
- "푸바오와 만나나" 질문에 中출장길 홍준표 "고향 간 판다 왜 집착?"
- 직장인 1000만명 이달 월급 확 준다…건보료 '20만원 폭탄'
- 민주 "대통령실-국방부 통화 드러나…채상병특검법 처리할 것"
- 2월 출생아 1.9만명 '역대 최저'…인구 52개월째 자연감소
- 서울대의대 교수들, 25일부터 개인 선택 따라 병원 떠난다
- 사직하는 교수, 휴진하는 교수…모레 '대학병원 셧다운' 현실 되나
- 선우은숙 친언니, 유영재 고소 "강제추행 혐의…선우은숙 큰 충격받아 이혼 결심"
- 총선 사전투표소 40곳 불법카메라 유튜버 재판행…공무원 대화도 녹음
-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차라리 안 내고 안 받고 싶어"…뿔난 MZ
- 사회 초년생 노려…순천서 아파트 218채 사들인 뒤 95억대 '전세사기'
- 전기요금, 또 '물가관리' 희생양 되나…고유가에도 '동결' 무게
- 전청조씨 아버지 16억 사기죄로 징역 5년6월 실형
- '조민 포르쉐 탄다' 명예훼손 혐의 강용석·김세의, 2심도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