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위기 앞 젤렌스키 "우크라 혼자 남겨져"…싸늘한 여론
- 22-02-25
NYT "리허설조차 않았던 전시 대통령, 계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
동부 지지 얻었으나 등 돌려…우크라 국민 그래도 단결
"나는 정부 구역에 머물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자정이 넘은 시각 어두운 낯빛으로 자신의 국외 도피설부터 잠재웠다.
CN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상 연설에서 "우리 정보에 따르면 적군은 나를 1번 목표로, 내 가족을 2번 목표로 삼았다"며 이런 상황에도 가족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정부 구역에 있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참수(decapitate)하고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통치 체제를 수립하려 한다는 미 국방부의 분석과 일치하는 발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체념한 듯한 어조로 러시아에 대한 외로운 항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렸다. 그는 "우리는 홀로 남겨졌다. 누가 우리와 함께 싸울 준비가 됐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코미디언의 진지한 연설, 통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희극배우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시 지도자'가 되는 건 거의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고 전했다.
매체는 '젤렌스키가 거의 예상치 못했던 역할로 뛰어들다: 우크라이나의 전시 대통령'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그가 우크라이나 현대사에서 가장 거대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이 발생하기 직전 연설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10분동안 평화를 호소하며 침공 중단을 촉구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NYT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리허설조차 하지 않았던 '전시 대통령'이라는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을지 매우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암살이라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데다, 이미 싸늘해진 여론이 그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 국민, 젤렌스키에 왜 실망했나
젤렌스키는 2015년 '국민의 종'이라는 드라마의 주연을 맡으며 인생이 역전됐다. 그는 극중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일하다가 반부패 운동으로 소셜미디어(SNS) 스타가 된 뒤 끝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역을 맡았다.
그는 2019년 대선에서 TV를 깨고 나와 새바람을 일으키며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을 누르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기성 정치인에게선 볼 수 없었던 젊음과 신선함, 패기가 매력으로 작용했다. 동부의 반군 지역과 분쟁 해결에 나서겠다는 공약 또한 지지율에 한몫했다.
유세 당시 젤렌스키는 '서방의 부패한 파트너'도, '러시아의 여동생'도 되지 않겠다면서 실용적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젤렌스키를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지역은 바로 친러시아 반군의 근거지가 위치한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다.
하지만 그는 동부의 친러 성향 지지자들에게 민심을 잃었다. 젤렌스키는 동부 출신인데다 러시아어가 유창하고, 러시아어로 사업을 했다. 친러 지지자들은 그가 친러시아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철학자 볼로디미르 예르몰렌코는 NYT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우크라이나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자, 젤렌스키는 점차 전형적인 우크라이나 애국자가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린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때 열렬한 시청자였던 국민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키예프 국제사회연구소가 지난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그는 인사에 실패했다. 부족한 정치 경험을 보완해줄 유능한 인사를 기용하지 않고, 대신 배우일 때 연을 맺었던 영화 제작자들과 스튜디오 감독, 극작가 등으로 참모진을 구성했다. NYT는 그가 서서히 실력을 가진 팀을 구축해 왔지만, 대부분은 외교나 전쟁은커녕 통치 자체에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고 지적했다.
다행스럽게도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대체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반부패행동센터의 다리아 칼레니우크 소장은 NYT에 "우크라이나인들은 뭉치고 있고, 우크라이나 군대는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젤렌스키 정부가 반역 및 테러지원 혐의로 체포하려 했던 전임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도 "모든 사람들이 키예프가 책임있는 행동을 보이길 바란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한편 24일 오전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군은 빠르게 우크라이나 3면을 통해 진입해 약 9시간여 만에 수도 키예프 북부까지 도달하고 주요시설을 점령하는 등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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