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00일] 정책 방향은 '합격점'…국민 '설득' 나설 때

한미동맹 재건·조세 개편·위원회 정비·도어스테핑 등 분명한 방향성 제시

부족한 여론 수렴, '소통' 의지 '불통'으로 전이…"겸손의 대통령십 기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100일은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갈린 시기로 요약된다. 한미동맹 재건과 세제 개편, 탈원전 정책 폐기, 각종 위원회 축소,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으로 대표되는 소통 의지 등은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 냈지만, 인사(人事)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우(愚)를 범한 것은 아쉬움으로 평가받는다.

명과 암이 확실한 만큼 남은 4년9개월의 임기 동안 윤 대통령이 집중해야 할 것도 분명해졌다. 뚝심을 갖고 정책을 끌고 나가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야 하는 것으로의 귀결이다. 무엇보다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이 오는 17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9일 대선에서 48.56%의 득표율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0.73%p(포인트)로 누르고 당선됐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역대 최소 득표율차이자 첫 5년 만의 정권교체란 기록을 세웠다. 이는 윤 대통령에게 양날의 검으로 다가왔다. 전자가 그만큼의 '반대' 세력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그럼에도 대선에서 약속한 공약을 추진하라는 원동력으로 읽혔다.

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원동력을 기반으로 빠르게 '비정상화의 정상화'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동맹 재건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21일 만에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빠른 한미 정상회담이다. 

무엇보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이후 29년 만에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찾아 정상회담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이 전면적으로 수정됐다는 상징성을 가졌다.

첫 해외순방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에 참석한 것도 윤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나토의 초청으로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회의에 참석한 것은 세계 질서가 개편하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가치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비정상의 정상화'의 한축으로 꼽히는 세제개편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16일 법인세와 상속세, 증권거래세,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낮추고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여러 규제 혁파에 역점을 둔 첫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법인세는 국제적인 조세 경쟁을 고려해 현 4단계의 과표구간을 단순화하고 최고세율은 현행 25%에서 22%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첫해 인상한 최고세율을 5년 만에 되돌리는 것으로, 민간을 중심으로 경제 정책을 펴겠다는 윤 대통령의 철학을 분명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기존보다 덜 걷힐 세금을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는 데서 최대한 보전하겠다는 점도 긍정적인 정책 방향으로 평가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위원회의 정비다. 정부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에서 558개였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631개로 늘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두 개가 폐지돼 현재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처 소속 위원회는 629개다. 이 가운데 약 절반을 폐지하거나 축소, 통폐합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구상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연평균 33억원을 썼는데 지난 2019년부터 3년간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위원회는 거의 없었다"며 "상당수 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존재하거나 운영되고, 고비용 저효율·비효율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 과감하게 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폐기도 윤 대통령의 정책 중심에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2일 원자로기, 전기 발생기 등을 생산하는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본사를 방문해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안 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었을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직격하며 원전 산업 정상화를 천명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나토 회의에서 만난 일부 유럽 정상들에게 적극적으로 원전 세일즈를 펼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원전 기술을 상대 정상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원전 산업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사에 처음 등장한 대통령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의 소통 의지를 드러낸 행보로 평가 받는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다음날인 5월11일 이후 지금까지 총 34차례의 도어스테핑을 가졌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는 첫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짧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로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때로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로 논란이 있기도 했으나 취지 자체를 부정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대다수다. 참모들이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도어스테핑의 축소 또는 폐지를 건의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워낙 의지가 강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뒷이야기는 유명하다.

윤 대통령의 '소통' 의지는 역설적으로 지지율을 갉아먹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침마다 기자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소통'이라고 인식한 점이 패착으로 꼽힌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의 만 5세 하향 문제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밝힌 이 정책은 발표 직후 학부모들과 교육 단체를 중심으로 극심한 반발을 샀다.

정부는 입학 연령을 하향함으로써 국가 돌봄 서비스를 국민에게 확대한다는 취지로 이 정책을 계획했으나 어떠한 전제 조건도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뉘앙스로 정책을 발표했다. 

혼란이 극심하자 대통령의 휴가 기간 중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은 방과 후 돌봄 등 제반 사항의 확립을 전제로 대책을 추진하면서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라고 지시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논란으로 결국 박 장관이 임명 34일만에 자진사퇴했다. 새정부 출범 후 장관이 사퇴한 첫 사례다.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도 비슷한 사례다. 윤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민정수석실을 없애면서 자연스럽게 대통령실내에서도 경찰 업무·관리가 사라졌다. 반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힘은 이전보다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비대해질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단 것이 윤 대통령의 생각이었고, 이것이 '경찰국' 설치의 핵심 근거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경찰관들에 대한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은 물론이고 이같은 설치 근거를 언론이나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전국의 경찰서장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자 윤 대통령이 '중대한 국기 문란'이라며 강도 높게 질책한 것만 남은 실정이다. 논란 끝에 경찰국은 설치됐지만 마치 '무조건 따라오라'거나 '선발표 후수습' 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인사(人事)에서 검찰 출신을 중용한 것도 대표적인 '불통' 사례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검사 출신이 임명되는 공직기강비서관과 법률비서관 외에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인사기획관과 인사비서관, 총무비서관, 부속실장을 검찰 출신으로 채웠다. 

이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과 국무총리 비서실장, 여기에 새정부 첫 금융감독원장에 측근인 이복현 전 부장검사를 임명하며 진보·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편중 인사란 비판을 받았다. 이 원장은 최초의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이 원장을 임명한 다음날 도어스테핑에서 '검찰 편중 인사' 질문에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민변 출신들이 대거 발탁됐는데, 왜 우리 정부는 검찰 출신들을 기용하면 안 되느냐는 답답함으로 읽혔다.

소통과 함께 취약점으로 평가받는 한 축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관련 논란들이 쌓이다 보니 문제될 것이 없는 데도 상대방으로부터 문제가 되는 프레임에 걸려 든다"며 "윤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마냥 이렇게 둘 수도 없는 만큼 관리에 나서야 한다. 적어도 제2부속실을 설치해 여사와 관련된 일정 등을 담당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윤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고 지금까지 돌아보면 늘 상대가 있는 '상대평가'에 강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상대가 없다. 대통령이란 위치에서는 '절대평가'만 있는 만큼 대통령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당도 일정 부분 정비가 된 만큼 겸손과 진정성 있는 소통의 자세로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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