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천장까지 완전히 잠겼다"…강남·서초 쑥대밭

아파트 들이친 흙더미, 빗물 퍼내는 상가…"강남은 전쟁통"

지하상가 잠기고…고급 단지내 포르쉐·벤츠 줄줄이 침수

거리엔 버스·승용차 뒤엉켜 쑥대밭…서울 한복판 '수재민'

 

"가게 천장까지 물에 다 잠겼어요. 45년 만에 이런 난리는 처음 봅니다."

9일 오전 문시광씨(77)가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 말이다. 문씨가 운영하는 떡방앗간을 포함해 지하에 있는 가게 약 10곳이 전날 내린 폭우로 천장까지 완전히 잠겼다. 상가 내부엔 퀘퀘한 냄새가 가득했다.

고인 빗물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턱까지 가득 차 빠지지 않고 있었다. 상가 주민들이 펌프로 빗물을 상가 밖으로 끌어내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어젯밤 늦게 설치한 빗물 가림막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문씨는 "45년 동안 가게를 하면서 이렇게 피해가 심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불과 1년 전에 화재로 가게에 기계를 새로 들여놓았는데 녹이 슬면 또 못쓰게 되겠다"고 허탈해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상가 지하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물에 잠겼다. 22.08.09/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진흥아파트 앞은 밀려온 흙더미와 나뭇가지, 쓰레기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상가 앞 도로에 대각선으로 멈춰 선 버스는 전날 급박했던 탈출 순간을 짐작하게 했다. 거리에는 마구잡이로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쓰레기통과 파손된 보도블록이 널브러져 있었다. 인도 3m 안까지 밀려든 진흙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도록 깊게 쌓였다.

이날 오전 진흥아파트 일대 상가와 편의점, 카페, 음식점은 아예 장사를 접었다. 한 편의점 앞에선 물에 젖은 상품 중 판매가 가능한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서초구청 직원들도 피해 복구 작업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서울 시내 한 가운데서 하루아침에 수재민 신세가 된 동네 주민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침수된 오토바이 시동을 걸다 포기한 주민 김영훈씨(38)는 "이런 난리가 다 있느냐"며 "전쟁통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도로에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이 어지럽게 얽혀있다. 22.08.09/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진흥아파트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강남역까지 이어지는 도로도 상태가 심각했다. 전날 멈춰선 차들이 편도 4차로 중 3개 차로에 어지럽게 얽혀 있어 차량 정체가 심각했다. 뒤늦게 짐을 찾으러 온 차량 주인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역 지하상가도 전날 내린 폭우로 피해가 컸다. 입구 근처에 있는 매장 피해가 유독 심각했다. 오전 9시40분쯤 한 휴대전화 대리점 셔터를 연 사장은 바닥에 흥건한 흙탕물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강남역에서 10년 가까이 옷가게를 운영한 윤모씨(49·여)는 "어젯밤에 비닐에 옷을 싸서 올려놓고 가게 내부 물건들을 치웠다"며 "흙탕물이 들어와 개찰구까지 물이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강남역 지하상가 9번 출구 앞 음식점 입구 앞에선 휴지로 급히 빗물 차단선을 만들어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매장 근무자는 "어젯밤 8~9시 사이 가게 중간까지 물이 들어찼다"며 "계단을 타고 물이 계속 흥건하게 흘러들어왔다"고 말했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빗물이 고여있다. 22.08.09/뉴스1 © 뉴스1 임세원 기자


이날 오전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도 차들이 침수 피해를 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람보르기니, 포르쉐, 벤츠 등 고가 차량이 주차된 지하 2층 벽면 약 80㎝ 높이까지 물 자국이 남아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주차장과 아파트 지하 통로 바닥에는 여전히 많은 물이 고여있었다. 청소 관리인은 "청소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몇 시간째 물을 퍼냈다"고 말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내부 상가도 오전 9시부터 고인 빗물을 퍼내며 피해 복구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 매장에선 작업자 10여명이 운동화 밑창 높이까지 차오른 빗물을 닦아내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20L 크기 파란색 휴지통이 쓰레받기로 퍼낸 빗물로 가득 차기도 했다.

이날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50~100㎜의 강한 비가 내릴 전망이다. 이날 오전 7시30분 기준 주요 지역 누적 강수량은 △서울 동작 417.0㎜ △서울 서초 387.0㎜ △경기 양평(옥천) 370.5㎜ △서울 강남 367.5㎜ △경기 광주 362.0㎜ △인천 부평 269.0㎜이다.

수요일인 10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수도권, 강원, 충북, 경북 100~200㎜(많은 곳 300㎜ 이상) △강원 동해안, 충청권, 경북 북부, 서해5도 50~150㎜ △전북 북부, 울릉도·독도 20~80㎜ △전북 남부, 전남 북부 5~30㎜ 수준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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