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軍은 왜 2년 전 '월북'을 얘기했나

국방위 회의록 보니… 장관 첫 지시가 "월북 가능성 잘 봐야"

"분석관은 '월북보다 실족 가능성' 보고"… 이유는 언급 안돼

 

지난 2020년 9월21일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과 관련해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정보분석관들로부터 '월북보다 실족일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달 16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이씨의 월북 시도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단 점에서 분석관들의 보고와 군 당국의 판단이 달랐던 점, 그리고 1년9개월 만에 군 당국이 기존 판단을 사실상 번복한 배경 등을 두고 의문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씨 사건 발생 사흘 뒤인 2020년 9월24일 오후 국방부 긴급현안보고 등을 위해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회의록을 보면, 서 장관은 당시 사건에 대해 '언제 첫 보고를 받았느냐'는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의 물음에 "저는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보고부터 최초부터 받고 있었다"며 "21일 오후 2시쯤인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서 장관은 이어 '첫 지시는 무엇이었느냐'는 강 의원의 질의엔 "'월북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잘 봐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지침을 줬다"며 "그 다음에 우리 (정보)분석관들은 현장에 있는 인원들하고 (상황을) 확인하면서 '그(월북) 가능성보다는 아마 실족이나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얘기들과 함께 (여러 보고를 했다)"고 답했다.

서 장관 또한 해당 보고를 받은 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탐색활동을 하자' 이렇게 지시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당시 회의에서 서 장관은 정보분석관들이 이씨에 대해 월북보다 실족 등 가능성에 무게를 둔 이유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 회의록상으론 '월북 가능성을 조사하라'는 최초 지시를 내린 배경 또한 불분명하다.

지난 2020년 10월22일 윤성현 당시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현 남해해경청장)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해경은 당시 "실종자가 도박빚 등에 따른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했다"고 밝혔다. 2020.10.2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다만 서 장관은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판단한 근거에 대한 질문엔 △선내에서 근무하는 다른 인원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데 이씨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점 △이씨가 부유물을 갖고 있었다는 점 △이씨가 신발을 가지런히 놓은 채 실종됐다는 점, 그리고 △이씨에게 월북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정보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에 강 의원이 "(이씨가 표류해서 북으로 갔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그냥 월북 의사를 밝힐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자 서 장관은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현재까지 우리가 내린 결론은 월북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영호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도 군이 파악한 이씨 사건 발생 경위를 설명하면서 서 장관이 설명한 것과 같은 '4가지 이유'를 들어 "(이씨가)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자세한 경위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합참은 국방위 회의 당일 오후 7시47분부터 9시22분까지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이씨의 월북 시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 회의록엔 기재돼 있지 않다.

다만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이던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의 다음날인 2020년 9월25일 오전 MBC라디오에 출연, '군 당국이 통신 감청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것을 보인다'는 지적에 "그렇다"고 답변, 우리 군이 대북 도·감청 정보, 이른바 특수정보(SI)를 바탕으로 이씨가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판단했음을 시사했다.

민 의원은 또 '이씨가 월북 의사를 밝힌 게 확인됐느냐'는 물음엔 "그렇게 보고를 받았다"며 "(군으로부터) 여러 가지 첩보나 정보를 판단한 결과, 그런 게(이씨가 북한군 측에 월북 의사를 표시한 게)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왼쪽)과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이 지난 16일 오후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과 추가 설명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2.6.16/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이와 관련 원인철 합동참모의장은 2020년 10월8일 합참에 대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이씨 사건 관련 첩보에 '월북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느냐'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단어는 있었다"고 답했고, '희생자(이씨) 본인의 육성이 아니지 않은가. 북한 사람들끼리 한 얘기지 않은가'란 거듭된 질의엔 "상식적으로 우리가 희생자 육성을 들을 수단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 의장의 이 같은 답변 내용은 이씨 사건 발생 당시 군 당국이 도·감청 등을 통해 확보한 북한군 교신 등 SI에 "월북"이란 표현이 등장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군 당국은 국방위 '비공개' 회의 등에서 이씨 사건 당시 수집한 SI 자체까진 여야 위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최근 이씨에 대한 '월북 시도 추정' 판단을 번복한 뒤에도 그 배경이 될 만한 '새로운 증거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 즉, 군 당국의 입장을 종합하면 이씨 사건 발생 당시엔 '월북' 표현이 등장하는 SI 등 정황 증거를 이유로 이씨가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현재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군 당국이 같은 사안을 두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입장을 바꾼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해양경찰의 경우 앞서 이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합참을 통해 SI를 일부 열람했다. 그러나 해경도 16일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씨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던 중간 수사결과를 뒤집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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