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신경영 선언' 29주년 그날…이재용, 반도체장비 챙기러 출장

이건희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자"…삼성 일류기업 도약 시발점

이재용, 삼성 미래 반도체 위해 네덜란드行…"목숨 걸고 하는 것"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한 지 29주년 되는 날, 이재용 부회장은 네덜란드로 출장을 떠난다.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ASML사의 EUV(극자외선노광장비) 장비를 한 대라도 더 구하기 위한 출장이다. 삼성을 오늘날 글로벌 1등 기업으로 만든 날이지만 방심하다가는 10년 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은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초격차 리더십 유지'를 주문하고 파운드리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해 45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진두지휘 중이다.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남도 이어갔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고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며 혁신을 주문했다.

"삼성이 자만에 빠져 창조적인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는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외형 성장보다는 질적 혁신으로 체질 변화를 강조했다. 이날 '신경영 선언'을 계기로 삼성은 쇄신에 나섰고, 글로벌 1등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작점이 신경영 선언"이라며 "1995년 3월 애니콜 화형식까지 거치면서 질적 성장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은 오는 7일 '신경영 선언일'에 별다른 행사를 열지 않기로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반도체 장비 확보를 위해 네덜란드로 출장을 떠난다.

미세공정에 필요한 ASML사의 EUV(극자외선노광장비)장비를 구하기 위해서다. EUV 장비 1대당 가격이 2000억~3000억원에 달하지만 생산 가능 수량이 1년에 약 40대뿐이라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  

이 부회장은 직접 ASML 최고 경영진에게 장비 공급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20년 10월에도 반도체 장비 확보를 위해 ASML 본사를 방문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를 방문,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매주 재판에 묶여 있는 이 부회장이 재판부의 허락까지 얻으며 출장에 나선 것은 '10년 후 삼성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전쟁, 인플레이션 등 경제 불확실성은 커졌고 글로벌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만 하더라도 글로벌 1위지만 위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강자 자리를 차지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경쟁사 추격이 거세고, 취약점인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점유율 52.1%)와 격차가 크다. 삼성전자 점유율은 18.3%에 그치고 있다. 이대로라면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세계 1위로 도약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 달성은 쉽지 않다.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에서 맞이한 데 이어 31일에는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와 만남을 가졌다. 모바일 등 차세대 반도체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5년간 45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지난 5년간 투자한 330조원보다 120조원 늘어난 수치다.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유지와 파운드리 점유율 확대에 집중하고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또 인공지능(AI)과 차세대 통신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주도하기로 했다.

이 부회장은 취재진의 대규모 투자 질문에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며 "앞만 보고 가겠다"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재계에서는 삼성의 초격차 유지, 반도체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했다.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통해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나설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유죄 판결을 받았기에 오는 7월 형 집행 종료일로부터 5년 동안 취업을 제한받는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현재 삼성전자에서 무보수·미등기·비상근으로 경영 자문을 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0월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삼성전자는 2년 넘게 총수 부재의 상황에 처해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2일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간담회에서 "기업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같은 기업인들의 사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길 바란다"며 "기업인이 세계 시장에서 더욱 활발히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찬희 2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도 지난 3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최고경영진·준법위 간담회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도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여론이 높은 만큼 삼성과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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