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폭망' 제주산 바나나, 더 똑똑하고 착하게 돌아왔다

수입산에 자취 감췄다 최근 재조명…'스마트팜 재배' 주목

푸드마일리지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로 환경까지 생각 

 

바나나는 한때 제주 농가에서 금기어나 다름없었다.

약 30년 전인 1989년 제주산 바나나는 443ha가 재배될만큼 각광받았다.

우루과이라운드(UR) 무역협상에 따른 수입자유화로 불과 3년만인 1993년에는 수입바나나에 밀려 제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이후 제주에서 바나나는 요샛말로 '폭망'의 대명사가 돼버렸다.

그랬던 바나나가 웰빙 열풍에 맞물려 친환경 재배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6년 하나로마트에서 계약재배 2농가 1ha를 시작으로 점차 늘더니 현재는 13농가가 9.7ha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김녕농협이 조성한 아열대 특화소득작목단지에서 9농가가 첫 수확에 성공하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

아직 규모나 생산량은 과거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제주산 바나나가 있다는 인식이 점차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면서 앞으로 제주농업의 한 축이 될 새로운 소득작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나나 시장 규모는 8000억원으로 과일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서 국내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억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잠재적인 시장성이 크다는 의미기도 하다.

돌아온 제주산 바나나가 주목받는 이유는 더 '똑똑해'지고, 더 '착해'져서다.

스마트팜 전문기업 제이디테크의 김희찬 대표가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식물공장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바나나와 스마트팜은 찰떡궁합…환경까지 생각한다

"삐이 삐이~"

지난 12일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스마트팜(Smart Farm) 기업 '제이디테크'의 식물공장 안에 들어가자 경고음이 울렸다. 식물공장 안의 습도가 낮아졌다는 알림이다.

식물공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공장에는 채소가 잘 자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센서가 달려 있다.

스마트팜이란 농업에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원격제어로 농작물을 관리할 수 있는 농장을 의미한다.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는 "스마트팜은 아직 시설 비용이 적지 않게 드는데 바나나는 단년생이라 재배와 수확이 빠르고 투입하는 인력, 시장성과 사업성 등을 고려할 때 스마트팜에 가장 적합한 작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휴대용 전자음악 기기로 성공을 거둔 김 대표는 20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도우려고 고향인 제주로 돌아왔다.

고령인 어머니를 보며 좀 더 쉬우면서도 더 효율적으로 농사를 짓는법을 고민하던 김 대표는 자신의 주특기인 ICT기술을 농사에 접목, 2018년 회사를 설립했다.

여러 작물 가운데 제주의 기후와 시장성, 사업 확장성 등을 고민한 끝에 바나나를 선택했다.

김 대표는 사무실에 앉아 김녕에 있는 농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으로 바나나 하우스의 온도와 습도, 토양 조건 등을 점검하고 버튼 몇개로 시설을 가동하거나 끌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농가 이외에 다른 바나나 농가에도 스마트팜 시설을 설치하거나 교육하는 일도 하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단순히 IT기술에 농업을 적용한 것이 스마트팜은 아니다"라며 "생산은 물론이고 유통과 판매 등 농업 전반의 혁신이 진정한 스마트팜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제주산 바나나를 먹는 것은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고도 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바나나를 재배한다는 김 대표는 "이론적으로 1000그루의 바나나를 재배한 23톤의 탄소를 저감할 수 있고 수입바나나가 선박 등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면서 엄청난 양의 화석에너지가 사용된다"고 했다.

먹을거리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거리를 '푸드 마일리지'라고 하는데 거리가 길면 길수록 환경에도 부담을 주고 식품의 신선도도 떨어지게 된다. 로컬푸드는 당연히 이 푸드 마일리지가 짧을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바나나 맛의 비결은 후숙인데 제주산은 수입산과 달리 장기간 냉장 처리 등을 하지 않아 더 맛이 좋다"며 "기후변화가 농작물의 위기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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