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2020년 수해…초당 3000톤 물폭탄에도 보상은 '0'

평생 들어보지 못한 '홍수관리구역'이라 조정 제외
정부는 "갈등 마무리" 자평…피해 주민들은 소송 시작
 
강물이 식당 앞까지 차오르자 한정희씨(80)는 마당에서 키우던 백구 두마리의 목줄을 풀었다. 열네살 검돌이와 열세살 빠가, 두 백구는 평소에서 차를 타는 것을 무서워해 달래서 차에 태울 시간이 없었다. 정희씨는 자식처럼 아껴온 개들이 강물을 피해 어디든 도망쳐 목숨을 건지길 바랐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금강의 상류인 천내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변에서 정희씨는 1995년부터 어죽 장사를 했다. 검돌이와 빠가는 정희씨가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키웠던 개똥이의 아들, 손자다. 검돌이는 어렸을 때 털이 거뭇거뭇해 붙인 이름이고 빠가는 어죽집이 '빠가사리'(동자개) 어죽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정희씨가 검돌이와 빠가의 목줄을 풀어준 2020년 8월8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온해 보였던 천내강은 오후 들어 급격히 불어나 정희씨의 가게 입구로 넘실거리며 밀려들어 왔다. 흐린 날씨에 비가 조금씩 내리긴 했지만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정희씨는 강물이 가게까지 차오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강물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을 보이자 정희씨는 식기며 음식, 가재도구들을 주방으로 몰아넣고 문을 굳게 잠갔다. 강 상류의 댐 수문을 열었다는 경고 방송이 있었지만 이때까지만해도 피난을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게 옆에 딸린 2층짜리 주택 위에 올라가면 거기까지는 물이 차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전부터 딸에게 걸려 온 전화가 계속 신경 쓰였다. 수화기 건너편 딸은 다급한 목소리로 '댐이 터질지도 몰라요'라며 '빨리 피신 가셔야 해요'라고 했다. 딸의 성화에 더해 강물이 가게 쪽으로 더 빠르게 차오르자 정희씨는 결국 피난을 택했다. 함께 가게를 정리하던 직원 한명과 가게 뒤에 세워둔 흰색 카니발 차량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희씨의 딸 한문희씨(54)는 그날 수해를 입은 친구를 돕기 위해 충남 천안시에 나와 있었다. 문희씨는 아버지의 식당이 있는 금산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금강 상류에 비가 많이 내려서 댐 수위가 높아지면 붕괴가 될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나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강 상류 용담댐의 수문 정보 시스템에 접속해보니 90% 정도였던 수위는 순식간에 102%까지 늘어났다. 댐이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게 도망가야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차에 올라탄 정희씨는 2㎞ 남짓 달려 옆 마을로 향하는 교량 근처까지 왔지만 이미 주변에 물이 차올라 다리를 건너려면 침수는 각오해야 했다. '늘 다니던 길이라 건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희씨는 엑셀을 밟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물은 깊었고 100미터 정도 나아갔을 때 시동이 '푹' 꺼졌다.

시동은 다시 걸리지 않았고 차 안으로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희씨는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주행 중에 잠겼던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말이 떠올랐다. 머릿 속이 하얘졌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차 문을 밀어내자 덜컥 문이 열리는 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발을 디뎌보니 물은 허리 높이 정도였다. 목숨은 건졌다는 생각에 물을 빠져나오니 휴대전화도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신고 있던 신발도 없어졌다. 정희씨가 빠져나온 뒤에도 물은 계속 불어 차는 천장까지 전부 잠겨버렸다.

지난 3월10일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자택에서 김상민씨가 2020년 8월 수해 당시 찍었던 사진을 펼쳐 놓으면 상황을 설명하고 잇다. 2022.3.10/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평생 처음 본 수해…모든 것이 쓸려 갔다.

정희씨의 집보다 직선거리로 2㎞ 정도 용담댐에 더 가까운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김상민씨(75)의 집 앞 도로에도 8일 오후 일찍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용화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상민씨는 1980년 지금 자리에 직접 집을 지었다. 집 앞 왕복 2차선 도로 넘어가 곧바로 강변이라 가끔 도로까지는 물이 차기는 했지만 40여년을 사는 동안 집 근처까지 물이 차오른 적은 없었다.

오후 2시쯤 물이 이 속도로 차오르다간 곧 집안으로 넘쳐올 것 같아 상민씨는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 '똘똘이'를 집 옥상에 올려두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200여미터 떨어진 마을 회관으로 몸을 피했다. 마을에서 그나마 고지대였던 마을 회관까지는 물이 차지 않았다.

상민씨는 피난 온 동네 주민들과 함께 회관 옥상에 올라 강물이 마을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바라봤다. 집 쪽으로 점차 강물이 흘러드는 것을 본 상민씨는 속상한 마음에 회관 안으로 들어가 술잔을 연거푸 비우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물이 점차 빠진 뒤 찾아간 집에선 온갖 오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당에 깔려 있던 자갈들은 모두 쓸려 내려갔고 대신 무릎 높이까지 펄이 쌓였다. 집 뒤쪽 비닐하우스 두개 동에서 키우던 깻잎도, 마을 주민들의 쌀을 정미해 주고 받은 나락도, 정미기도, 고추 건조기도, 저온 창고도 전부 물에 폭삭 젖었다.

속으로 '제발 집 안쪽으로까지 물이 스며들지 않았길'하고 바라며 현관문을 열었지만 펼쳐진 모습은 참담했다. 물이 쓸고 들어가 온갖 가재도구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물은 꼭꼭 잠긴 문틈 사이로, 방충망의 사이로 스며들어와 집안을 휩쓸어놨다.

물에 젖지 않은 가구, 전자기기가 없어 모두 내버려야 할 판이었다. "쓰레기가 큰 차로 몇차가 나갔어. 나가고 또 나가고" 상민씨는 수해 당시 피해 사항을 정리한 종이를 보이면서 이불부터 TV까지 쓸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홍수관리구역' 평생 처음듣는데…정부 책임은 없다

수해 이듬해인 지난 2021년 손해사정사가 상민씨네의 피해를 산정한 금액은 6500만원이었다. 하지만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 정부 사이의 피해 조정절차를 진행한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중조위)는 상민씨에게 단 1원도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환경부는 상민씨의 집과 비닐하우스가 '홍수관리구역' 내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홍수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정희씨도 가게 천장까지 물이 차면서 가전, 가구부터 각종 집기, 음식 재료까지 모든 것이 휩쓸려 갔지만 중조위는 가게 부지 일부가 홍수관리구역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피해액의 60% 정도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통보해왔다.

정희씨와 상민씨를 포함해 금산군 내에서 2020년 8월 용담댐 방류로 피해를 입은 513명이 지난해 9월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265억7800만원이다. 이 중 중조위가 확정한 보상 대상자는 457명으로 인정된 보상금도 절반 수준인 130억8554만원이다. 피해를 입었지만 토지가 하천구역, 홍수관리구역 내에 포함된 이들 35명은 조정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지난 3월10일 오후 김상민씨가 집 앞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2020년 8월 수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수해 이후에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하천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2022.3.10/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환경부는 하천·홍수관리구역의 경우 '홍수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활하다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중 홍수관리구역은 2007년 하천법이 개정되면서 법률에 담긴 개념이다. 지역 하청관리청이 홍수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하천 인근에 일정 지역을 홍수관리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정희씨와 상민씨의 경우 홍수관리구역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현재의 장소에서 장사를 하고 농사를 지었다. 심지어 평생을 용화리에서 나고 자란 상민씨는 용담댐이 지어지기 전부터 현재의 집에 터를 잡고 살았다. 상민씨와 정희씨는 입을 모아 자신들의 가게와 집이 홍수관리구역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이번 수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그들은 이전에 누구도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상민씨는 자신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홍수관리구역이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며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 위해 허가를 받았을 때도 관련해서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는데 인제 와서 아무런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손해사정 때까지 만해도 당연히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줄 알고 인지세까지 미리 냈던 상민씨는 "지금이야 세월 지나가니 이렇게 이야기하지"라며 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환장하고, 아주 미치고, 다 때려죽이고 싶었어"라고 했다.

환경부는 홍수관리구역 지정은 정해진 '행정절차'에 따라 문제가 없이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 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이 '하천·홍수관리구역'에 포함됐는지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환경부는 법에 따라 관보 고시, 언론 광고, 주민설명회, 자료 열람 등을 통해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구역 지정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구역 지정에 대한 홍보가 주민 100%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토지 소유주 개개인들에게 우편이나 전화로 통보를 하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희씨의 딸 문희씨는 "공청회도 한 기억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관련해서 문의를 했는데 '법적으로 공청회를 할 근거가 없고 그래서 안 했고 고시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이렇게 빠져나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초당 3000톤 쏟아진 물…자연재해 아닌 인재

정희씨와 상민씨를 포함해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금산군 주민들은 2020년 홍수가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이기 때문에 구역을 따지지 말고 물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용담댐은 이상 기후로 강수량을 예측하지 못했고 7월말부터 홍수기 기준보다 많은 양을 물을 댐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다 유입되는 물의 양이 많아지자 급격하게 방류를 시작했다. 최대 초당 2919톤의 물이 쏟아졌고 물은 강줄기가 굽이는 곳마다 범람해 주민들을 덮쳤다. 금산군에서만 408만5000㎡(약 123만5700평)의 땅이 수몰됐다. 주택 125동이 물에 잠겼고 233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2020년 용담댐 홍수조절 현황. 8월7일 오전 8시 초당 386톤이었던 유입량이 9시에는 초당 1000톤 이상으로 늘었고 8일에는 최대 초당 4300톤의 물이 댐으로 쏟아졌다. 용담댐은 7일 총 저수용량이 92%에 다다르자 방류량을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7일 오후 4시 490톤, 오후 8시 691톤, 8일 오전 10시 1442톤, 오전 11시 1763톤, 그리고 8일 오후 1시 초당 2919톤의 물을 토해냈다. (출처:댐 하류 수해원인조사 보고서)© 뉴스1

수자원공사는 방류 사실을 3시간 전 관계기관과 하류 주민들에게 알려야 하지만 다수의 주민들은 방류량을 급격하게 늘린 직후에야 통보를 받았고 아예 관련 사실을 고지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에 그해 수자원공사의 국정감사 현장에서 한 의원은 '주민들을 상대로 살수대첩을 한 것'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정부가 2020년 수해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한국수자원학회에 의뢰해 진행한 '댐하류 수해원인 조사 용역 보고서'에도 "국가는 기술적·사회적·재정적 제약 등으로 인한 운영·관리상 한계가 있었으나 홍수 피해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언급을 비롯해 홍수 피해에 국가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는 문구가 담겼다.

하지만 이런 보고서의 내용에도 중조위는 "원인조사 보고서는 피신청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댐 및 하천 관리 관련 법령 등을 위반해 신청인의 홍수 피해를 보상할 책임이 있다는 결과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논리로 중조위는 피해주민들의 피해신청 금액 중 64%의 금액에 대해서만 보상하는 조정안을 내놨고 하천·홍수관리구역의 피해에 대해서는 '합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조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보상 논의에서 제외된 주민들의 불만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조위는 지난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 수해 피해 조정 사건에 대해 "그간 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소송으로 진행되던 수해 갈등을 사건 접수 후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마무리한 의의가 있다"고 자평했다. 중조위의 이런 평가에 상민씨는 "xx놈들"이라며 욕설을 쏟아냈다.

결국 조정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들은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 전을 준비하고 있다. 상민씨는 70여년 평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소송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고 했다. 정희씨는 나이들어 송사를 다투는 것이 부질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딸인 문희씨의 설득에 소송에 참여했다. 

수해가 일어난 지 20개월이 넘게 지났지만 소송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은 또다시 기나긴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정희씨와 상민씨였지만 수해 이후에 여러 공통점을 가지게 됐다. 그중 하나가 물을 보면 자꾸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정희씨는 홍수를 겪어보니 '물이 참 무섭다'고 했고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동네 앞을 흐르는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며 놀았던 상민씨의 경우 이제 비가 오는 날이면 강이 다시 불어날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정희씨의 딸 문희씨는 검돌이와 빠가도 물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얘네들이 원래 산책을 가면 물가 쪽으로 잘 가는 애들인데 한참을 물가 쪽으로 안 가더라고요. 무서워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지난 3월10일 오후 한문희씨(54)가 2020년 8월 수해 당시 강물을 피해 도망을 갔다 돌아온 개 빠가를 돌보고 있다. 2022.3.10/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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