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전기차에 '전기도둑' 늘었다…아파트는 '충전 전쟁'

주차장 콘센트 무단 충전…공동전기료 증가 등 입주민 피해↑

"장애인 전용공간처럼 인식돼야…내연차 역차별도 해소 필요"

 

"이런 충전기는 정식 절차를 밟은 게 맞나요?" "전기 도둑들 때문에 공동전기료가 더 나오는 건 아닐까요?"

지난달 서울시 성북구의 A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른바 '도전'(盜電·전기 도둑) 자동차로 보이는 사진이 올라오자 쏟아진 반응이다. 즉시 고발하겠다며 유사 사례에 대한 제보를 독려하는 입주민부터 콘센트를 전부 막아버릴 순 없느냐며 감정적으로 나오는 입주민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한목소리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해당 아파트만의 일은 아니다. 전기차 오너들이 모인 카페 등에선 이러한 도전 행위를 꼬집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등에서 공인 충전기 구입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이동형 충전시설'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전기차 오너들로 인해 입주민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 '집밥'도 돈 내고 먹어야…전기 몰래 쓰는 건 '절도'

이동형 충전기엔 별도의 과금장치가 달려 있어 220V 콘센트를 이용, 차량 충전을 할 수 있다. 주차장 벽면 콘센트만 있으면 충전이 가능하기에 소위 '집밥'(집에서 편하게 충전하는 것)을 원하는 전기차 차주들이 많이 찾고 있다. 20년 이상 된 아파트의 경우 고정형 충전 공간이 부족해 이 같은 충전시설이 더 인기다. 이를 사용하려면 특정 업체의 충전기를 구매해야 한다. 요금은 전기를 쓴 만큼 차주에게 부과된다.

하지만 문제는 무단으로 공용 전기를 이용하는 얌체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비상용 보조 충전기를 이용해 220V 콘센트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전기 요금은 공동관리비로 처리된다. 무단으로 사용한 전기 요금을 공동주택 전체 가구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당하게 충전을 하는 입주민들도 의심의 눈초리에 시달릴 때가 많다. 

A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최근 공동전기료가 많이 나왔는데, 전기를 훔쳐 쓰는 행위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며 분개했다. 3년째 전기차를 몰고 있는 장모씨는 "지하주차장에 인증되지 않은 충전기로 도전을 하는 차량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하는데 이후엔 다른 동 주차장으로 옮겨 다니는 것 같다"며 "이런 차량이 한 두대 늘어나면 결국 피해는 애꿎은 입주민들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전기를 훔쳐쓰다 적발되더라도 초기엔 관리사무소나 경찰의 중재로 무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다수가 '몰랐다'며 고개를 숙였기 때문인데, 이는 엄연한 범죄다. 지난해 광주에서는 공용장소 전기 콘센트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전기차를 충전한 20대가 절도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동형 충전시설은 주차 구역이 따로 설정돼 있지 않은 탓에 마찰이 생길 때가 있다. 콘센트가 설치된 벽면이나 기둥에 내연기관차가 있을 때 '차량을 옮겨달라'며 양해를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순조롭게 해결될 때도 있는 반면, '전용 구역도 아닌데 왜 귀찮게 하느냐' '나는 어디다 주차를 하라는 것이냐'며 볼멘소리를 듣는 일도 다반사다. 4000세대 이상이 모인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한 경비원은 "하루 걸러 전기차 충전과 관련한 민원이 들어온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도전은 분명한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입주민들의 신고나 도전 행위를 일삼는 차주를 공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며 "결국 전기차 오너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기에 지속적인 계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아파트는 밤마다 충전 전쟁…문제는 인프라

도전 행위 등도 결국 충전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탓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동형 충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라면 어쩔 수 없이 비상용 충전기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충전 공간 자체도 부족한데 전기차는 충전에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급속의 경우 40~50분, 완속의 경우 5시간 이상 걸린다. 이렇다 보니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나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선 충전 경쟁이 벌어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신규등록은 10만대로 전년(4만6700대)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100대당 개인·공용 충전기 수는 2017년 말 59.7기까지 늘어난 뒤 2020년 8월 기준 50.1기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규제 강화 방침에 따라 전기차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충전시설 구축 속도는 더디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20년 조사한 '친환경 교통수단 이용 및 불편사항'에 따르면 충전소 부족(41.7%)과 충전속도(19.0%) 등이 전기차 구입의 장애 요인으로 꼽혔다.

전기차가 빠르게 늘면서 갈등도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공약집에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규등록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환경부는 올해 전기차 보급 목표를 총 207500대로 잡았다. 전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기차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정부도 제도 마련에 힘을 쓰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이미 지어진 아파트라도 100가구 이상이면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기존 아파트는 총 주차면수의 2% 이상, 신축 아파트는 5% 이상 전기차 충전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충전 방해 행위에 대한 단속도 까다로워졌다. 충전하지 않으면서 전용 공간에 전기차를 주차하는 행위 역시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다. 인력 부족 등 단속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전기차 오너들은 당장의 충전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공간을 전기차 전용으로 바꿔야 하기에 주차난이 커지는 부작용도 뒤따른다. 

전기차 차주 박모씨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선제적으로 전기차 충전 공간을 만들었으나 해가 바뀔수록 충전 경쟁은 심해지고 있다"며 "전기차는 많아지는데 아파트 측에선 법적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에 충전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장애인 전용 주차'처럼…인식 변화 가능할까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도 전기차 충전구역 내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전기차 충전을 방해하는 행위가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점을 모르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달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전기차 전용 공간에 주차했다가 과태료를 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나도 몰랐다' 식의 댓글도 여럿이었다. 입주민 온라인 커뮤니티엔 아파트 전기차 충전공간 사용과 관련한 질문도 꾸준히 올라온다.

아파트가 아닌 빌라 등에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도 이견이 생긴다. 신축 빌라는 세대당 1대, 많게는 1.5대의 주차공간이 제공되지만, 오래된 곳의 상황은 다르다. 가뜩이나 주차장이 협소해 평소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은데, 전용 충전시설이 들어서면 해당 공간은 사실상 전기차를 보유한 세대만 쓰게 된다는 게 반대하는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전기차는 구매 단계부터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충전 때도 혜택을 누리는 셈이라 내연기관차 오너만 역차별에 놓인다는 불만도 나온다. 아울러 도심의 60% 이상이 아파트로 구성된 한국의 주거형태 상 개인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전기차 확대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관심도가 낮으니 관련 법령 등을 지나치기 쉽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교수는 "전기차가 확대됨에 따라 늘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려면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장애인 전용 공간에 아무나 주차를 하지 않는 것처럼 전기차 충전 공간도 반드시 필요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시에 내연기관차 차주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해소할 필요가 있고, 주거 형태를 고려한 충전 인프라 확충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