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35일 李·尹 '초접전'인데…역대 대선 한 달 전 여론조사는 어땠나

6번 중 5번은 한 달 전 1위 후보가 당선…16대 노무현은 이례적

단일화 성사된 3번 중 2번은 대선 승리…안철수 바람 다를까

 

제20대 대통령선거가 3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혼전 양상이 지속되면서 정치권은 초긴장 상태다. '0선' 정치인인 여당 후보와 제1야당 후보는 각자 지지율 상승세와 정체기를 반복하더니 2일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 박빙 승부를 보이고 있다.

역대 대선을 한 달 정도 앞둔 시기에 발표된 여론조사와 실제 대선 결과는 어땠을까. 문민정부가 들어선 14대 대선부터 19대 대선까지의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살펴봤다.

◇한 달만에 1·2등 뒤바뀐 건 16대 대선 뿐…2·3등 역전은 두 차례

대선 한 달 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한 후보가 대선에서까지 승리한 경우는 6번 중 5번이었다. 다시 말해 1등과 2등이 한 달 새 역전된 경우는 2002년 12월19일 시행된 16대 대선 한 번뿐이었다.

2002년 11월20일 시행된 다자구도 지지율 조사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33%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25%),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24%)를 넉넉하게 눌렀다. 하지만 노 후보와 정 후보가 한 달 동안 막판 단일화 협상에 성공하면서 노 후보 지지율이 크게 뛰었고 최종 대선에서 노 후보가 48.91% 득표를 얻어 이 후보(46.58%)를 역전했다.

2·3등 후보가 대선에서 뒤바뀐 경우는 두 차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2007년 17대 대선을 한 달여 앞둔 11월25일 조사에서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19.3%,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14.4%로 각각 2, 3위였다. 하지만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당선인을 이은 2위를 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한 19대 대선의 변수는 '네거티브'였다. 대선을 한 달 앞둔 2017년 4월4~6일 조사에서는 '바람'을 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35%로 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7%로 3위를 기록했지만 안 후보의 가족 관련 의혹과 'MB 아바타' 발언이 치명타가 됐다. 결국 대선에서는 홍 후보가 24.03% 득표율로 2위, 안 후보는 21.41%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9대 대선 앞두고 '오차범위 내 접전'…한 달 못 갔다

지난달 25~27일 시행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지지율은 35% '동률'로 나타났다. 앞서 19대 대선 국면에서도 '초박빙' 시기가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2017년 4월 조사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8%, 안철수 후보가 35%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안희정·이재명 등 민주당 경선 후보들의 지지가 문 후보로 결집하지 않고 안 후보에게 몰린 것으로 분석됐다. 이른바 '안풍(安風)'의 동력이 민주당 경선의 '반사이익'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반사이익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달 전까지 3위였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대선에서는 대구·경북(TK) 지지를 등에 업고 2위로 올라섰다. 보수층 표심이 홍 후보와 안 후보로 분산되면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최종득표율 41.08%로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최근 두 자릿수 지지율로 올라선 '제3지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지지율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 연휴가 지나고 안 후보가 한 자릿수 지지율로 주저앉는다면, 지난달까지의 상승세가 거대양당 내홍에 따른 일시적인 반사이익이었다는 평가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안 후보가 대선까지 10%대 중반 이상의 지지율을 안전하게 유지한다면 이는 19대 대선 때의 '안풍'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바람이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단일화 이뤄진 3번의 대선…그 중 2번은 대선 승리

역대 대선에서 단일화가 성사된 것은 15대 대선(김대중-김종필), 16대 대선(노무현-정몽준), 18대 대선(문재인-안철수) 총 세 번이었다. 모두 1위 후보의 대세론이 비교적 견고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단일화의 과정과 결과는 제각기 달랐다.

2012년 18대 대선 국면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선을 40일 정도 앞두고 지지율 2, 3위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단일화 이후 안 후보의 행보를 두고 공방이 오가는 등 양쪽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에서 박 후보가 과반 득표(51.55%)로 18대 대통령이 됐다.

반면 15·16대 대선에서는 단일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특히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의 단일화는 최근 보수 야권 단일화의 모델로 언급되는 사례다.

단일화가 대선 약 두 달 전 일찌감치 이뤄졌다는 점, 'DJP 연합 정부'라고 불릴 정도로 김종필 후보 측이 많은 지분을 약속받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김대중 후보는 대선 한 달 전이자 단일화 한 달 후인 1997년 11월15일 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10%포인트(p) 가까이 눌렀다.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 표심이 이 후보에게 결집했지만 김대중 후보가 40.27% 득표로 당선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냈지만 그 과정과 내용은 15대 대선과 크게 달랐다. 박빙의 2, 3위였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는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기에 노 후보로 단일화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단일화 내용과 '보상'을 둘러싼 양쪽 갈등은 첨예해졌고 정 후보는 대선 투표일 전날 밤 노 후보 지지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적어도 DJP 연합에 준하는 정도의 조건을 내걸어야 화학적 결합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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