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현장엔 세 가지가 꼭 있습니다"…술병·약봉지 그리고 ○○○

[홀로 맞은 임종]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 김현섭 대표 인터뷰

"고립된 사람 위한 '커뮤니티' 필요, 고독사법 예산·책임 명시도"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아 한기가 느껴지는 방 두 칸의 조그만 반지하 집이었다. 변기 옆 쓰레기통과 주방에는 소주병과 편의점 음식 상자, 우유갑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그의 건강 상태를 말해주듯 약봉지도 발견됐다.

추위를 피해 전기요에 몸을 뉘었던 60대 남성 A씨는 홀로 사망했고 이웃에 의해 2주 만에 발견됐다.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김현섭 대표(40)는 "고독사 현장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주변에 홀로 고립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매번 깨닫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본 마지막

김 대표는 고독사 외에도 쓰레기집, 화재 현장 등을 처리한다. 고독사 현장 청소 비율은 30~50% 수준으로 한 달에 적게는 5건, 많을 때는 10건 정도 의뢰가 들어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고독사 현장 의뢰가 더 늘었다.

홀로 고립된 채 사망한 이들의 흔적을 쫓다 보면 사망 원인을 알게 된다. 20대는 우울증과 강박증, 중장년층은 경제적 이유, 노년층은 건강 등의 이유가 가장 많다. 이들은 가족들과도 오래전 단절된 경우가 많아 대체로 이웃이나 집주인 등에 의해 발견된다.

고독사 현장을 수없이 목격한 그에게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울산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남성의 모습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조선업 경제 침체로 실직자가 많았던 즈음이다. 일자리를 잃은 뒤 주식 투자에도 실패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 작은 방에서는 괴로움이 가득한 메모들이 발견됐다.

지난 1월 라이더로 일하다 극단선택을 한 40대 남성도 김 대표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의 헬멧 안쪽에는 딸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김 대표는 "가족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분인데 홀로 고립돼 사망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간혹 현장에서 반려동물이 주인 옆에 함께 죽어있는 경우도 마주한다. 주인이 숨진 자리를 지키다 굶어 죽은 경우다. 김 대표는 "사람을 좋아하는 반려동물이 주인을 따라 죽은 모습을 볼 때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김현섭 에버그린 대표가 14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4/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오랫동안 다닌 회사 때려치우고 특수청소업으로

김 대표가 처음부터 특수청소를 업으로 삼은 건 아니다. 그는 지난 2020년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특수청소업체를 차렸다.

해외의 특수 직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본의 '고독사' 문제 심각성을 일찍부터 인식했다. 한국에서도 고독사 문제가 점점 부각되면서, 남들이 잘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이 일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퇴사 후 6개월간 어떻게 하면 냄새를 확실하게 지울 수 있을지, 방법을 미친 듯이 연구했다. 김 대표는 "특수청소업이 성행했던 일본의 업체들에 전화하거나 이메일로 질문했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장비나 약품도 새롭게 실험해봤다"고 설명했다.

죽음의 현장과 처음 마주할 때가 가장 힘들다. 그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장에 최초로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무서웠다"며 하지만 이제 웬만한 현장도 두려움 없이 들어간다고. 처음에는 방독면에 장갑, 덧신, 전신 방호복까지 완전무장을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와 장갑만 끼고도 현장 감정을 다닌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감정이입 하면 절대 일을 할 수 없다"며 "처음에는 남의 불행이 내 직업이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고인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청년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의료계 공동행동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11.14/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사람이 그리운 사람들

"가끔 쓰레기집 청소를 의뢰했던 고객들이 외로우니까 전화가 와요. 밤에도 잘 지내시냐고 연락 오기도 하고요."

우울증·강박증 등으로 쓰레기를 집안 가득 쌓아놓는 '쓰레기집'은 고독사의 전조 현상으로 읽히기도 한다. 김 대표는 홀로 고립돼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커뮤니티'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들에겐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입장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라며 "지자체에서 형식적으로 찾아와서 도장만 찍고 가는 방문 지원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지역사회 단체들을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해 주는 것이 오히려 고독사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시행된 '고독사예방법'에도 정작 중요한 '예산'과 '책임'이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22년 예산 중 고독사예방법 관련 예산은 10억원에 불과하다. 고독사예방법에는 실태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외에 각 부처와 지자체의 책임이 빠져 있다.

김 대표는 "예산이 책정돼야 인력, 구호 물품, 지원센터 등을 늘릴 수 있는데 예산도 없고 현재 정확한 통계 파악도 되지 않는다"며 "일본, 영국처럼 고독사 예방법 시행령과 규칙 등에 강제, 의무 조항 등 실질적 효과를 강구할 수 있을 만한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 업체들이 없어져도 좋으니 이렇게 죽는 사람들이 안 생기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인터뷰가 진행된 1시간반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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