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서 사망 일주일만에 발견된 70대…아들에게 남긴 A4 한장

7일 오전 수도권에 있는 원룸에서 특수청소 업체 인력 두 명이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19.8~25.1㎡(6~8평) 규모의 집안은 '특수 청소'로 정돈된 상태였다. 바닥에 굳어 있던 혈흔은 자취를 감췄고 식기와 옷가지 등 물품들은 수거됐다.

고(故) 김만호씨(70대·가명)의 서류더미만이 방 한쪽에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홀로 살던 만호씨가 생전 보관하던 서류들이다. 

◇임종 이후에도 일주일간 홀로 있어

그중엔 A4 한장짜리 양도·양수서가 있었다. '쌍방 합의'에 따라 만호씨의 사업장 영업 권리를 아들에게 승계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의 서명은 적혀 있었지만 만호씨의 서명은 적혀 있지 않았다.

대부업체의 '지연손해금' 청구 신청서도, 96쪽 분량의 '병원 의무 기록지'도 방안에 있었다. 만호씨는 지난 2일 자신의 원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숨진 지 7일 정도 지났던 것으로 추정됐다. 

자녀들과 배우자 등 가족과 떨어져 지낸 만호씨는 임종 이후에도 한동안 혼자 있어야 했다. 경찰은 평소 지병이 있던 그가 자연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희망과 기대가 차오르는 새해 정초에도 사람들은 외롭게 세상을 떠난다. 고독사는 막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지난해 4월1일 시행된 고독사예방법은 '막는 것'에 초점을 맞춰 주목을 받았으나 9개월이 지난 현재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이 법의 목적(제1조)은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개인적·사회적 고독사 피해를 방지하고 국민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고독사 위험으로부터 그 대상자를 적극 보호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같은 법 제4조에 규정돼 있다.

요컨대 고독사예방법의 골자는 고독사 예방 기획계획(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따라 5년마다 고독사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관계기관과 협의해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고독사예방법 실효성 없다"

고독사 관련 공신력 있는 통계가 없는 만큼 실태조사로 고독사 현황을 파악하고 예방 대책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 시행 9개월이 지난 17일까지 실태조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현재 실태조사 연구용역 발주를 검토하고 있다. 2월 말이나 3월 발주가 되면 그 이후나 실태조사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계획대로 올해 상반기 실태조사에 돌입해 하반기 결과를 내도 최종 목표인 기본계획은 내년은 돼야 수립될 것으로 보인다. 

고독사예방법 등을 근거로 예방 대책을 논의하는 '협의회'도 구성되지 않았다. 복지부의 고독사예방법 관련 업무가 자살예방정책과에서 지역복지과로 이관됐지만 업무 추진 과정에서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 김현섭 대표는 "특수청소업계가 요즘 호황인데 고독사 등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이라며 "현장에서 절실히 실감하는 것은 고독사예방법에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 시행 초기라 시간적인 문제나 법적인 문제, 예산 관련 문제가 있다"며 "고독사예방법에 근거한 대책을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고독사가 잇따르는데도 법이 현장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을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독사 위험요인 등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주무부처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복지부가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지원하고 지자체 소속 사회복지공무원이 투입돼 해당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의 사회복지 업무가 최근 크게 늘어난 만큼 관련 예산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기재부서 예산 38% 감액

복지부는 올해 고독사예방법 관련 예산으로 16억원을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 검토에서 37.5% 감액돼 10억원으로 확정됐다. 복지부는 10억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실태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등 과정에 투입한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지자체가 참여하는 고독사 지원 공모 사업에 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공모사업엔 전국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9곳만 참여할 수 있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복지부가 광역자치단체의 참여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복지부 안에선 "예산 확대를 꾸준하게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예방법 하나 만들었다고 고독사 예방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법이 취지에 맞게 시행되려면 예산과 지원 업무 등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하지만 그 과정이 미진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고독사예방법 시행 전에도 독거노인 같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복지 서비스가 있었다"며 "청년이나 중장년층도 최근 복지 대상으로 떠오른 만큼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원 방식으로 고독사에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 위험군이 드러내는 위험 징후를 사전에 감지한 뒤 그 정보를 취합해 대응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과거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가 집 앞 신문이 쌓인 곳을 보고 신고해 고독사를 방지한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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