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왜 초강수를 뒀나

'뉴삼성' 향한 성장 한계 돌파구 절실했을 듯, 사장단 전원 교체 변화 택해

경쟁사 추격, 신사업 정체에 위기감 고조…미국 출장 계기 현실 직시한 듯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와 마음이 무겁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북미 출장 뒤 한말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고 난 뒤 13일 만에 예상을 뒤엎고 사장단 전원을 교체하는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

5년 만에 떠난 미국 출장에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버라이즌, 모더나 등의 최고 경영진과 정계 인사까지 두루 만난 이 부회장이 '뉴삼성'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뉴삼성' 향한 성장 한계 돌파구 절실했나…관측 깨고 대표이사 전원 교체 강수

8일 현재 이 부회장은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물고 있다. 이번 삼성전자 인사 발표 하루 전에 중동 출장을 떠난 것을 감안하면, 출장 전에 인사 내용을 최종 결정한 뒤 중동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인사 내용은 여러모로 회사 안팎의 관측을 완전히 깬 것으로, 김기남 DS(반도체)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김현석 CE(소비자가전)부문 대표이사 사장, 고동진 IM(모바일)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모두 물러났다.

대신 CE부문 TV사업부를 이끌던 한종희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CE와 IM을 통합한 '세트'(SET, 완제품)부문을 이끌고, 경계현 삼성전기 사장이 위촉 업무 변경 인사를 통해 김기남 부회장이 맡았던 반도체부문을 맡는다.

2017년 10월 인사에서 대표이사에 올랐던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등 기존 3인은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재선임돼 2년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203조원으로, 2018년의 243조77000억원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 연 매출 달성이 예상되는 데다,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증가한 37조7600여억원으로 실적이 좋았던 만큼, 세 대표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는 등 삼성은 총수를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이다.

때문에 삼성이 올해 인사에서는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되, 향후 이어질 임원인사에서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해 미래를 대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 힘이 실려 왔다.

삼성전자가 2022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한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다. (다중노출)2021.12.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그러나 이 부회장은 관측을 깨는 과감한 변화를 택했다.

이 부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CE와 IM부문을 9년 만에 다시 통합하고, 반도체 사업부문 수장을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은, 시장의 냉정한 평가, 자신이 5년 만의 미국 출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냉혹한 현실 등을 감안한 승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장이었던 정현호 사업지원TF 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힘을 실어준 것도 '미래 먹거리'를 고민한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사업지원TF는 전략, 인사 등 2개 기능을 중심으로 삼성전자 및 관계사의 공통 이슈 협의, 시너지 및 미래사업 발굴 등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 설계'라는 중책을 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규모 매출을 기록,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변함없이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았다.

삼성전자는 D램(휘발성 메모리)과 낸드플래시(비휘발성 메모리) 등 메모리반도체는 글로벌 1위이지만,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을 비롯한 경쟁업체의 추격이 거세다.

이 부회장이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는 경쟁사들보다 기술력이나 시장점유율에서 한참 뒤처져 있는 후발주자이지만, 좀처럼 가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경우 올해 2분기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대만의 TSMC가 52.9%(트렌드포스 조사)로 앞서 있고, 삼성전자는 17.3%로 한참 못 미친다. 두 기업 간 점유율 격차가 35.6%P로, 1년 전인 2020년의 2분기의 33.1%P보다 격차가 오히려 벌어졌다.

더군다나 파운드리 사업을 포기했던 인텔이 미국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힘입은 듯 파운드리 사업을 재개를 발표하고, 지난 2월 총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밝히는 등 경쟁사들이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반면, 삼성전자는 17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2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을 지난달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에서야 확정하는 등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을 면치 못해왔다.

스마트폰의 경우 비록 폴드와 플립의 흥행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데다 미국 애플과 중국 업체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점유율이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삼성 딜라이트샵에 삼성전자 폴더블폰인 갤럭시Z폴드3와 갤럭시Z플립3가 진열돼 있다.  2021.9.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글로벌 경쟁 격화 대비 조직 재정비…후속 임원인사도 큰 폭 변화 전망

삼성전자의 주가만 하더라도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감으로 올해 1월 한때 10만원에 근접했지만, 이후 하향 추세를 보여 현재 7만원 중후반대에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비롯한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나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제2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삼성은 경쟁사인 LG나 SK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에 삼성SDI 대표이사에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이 내정된 것도 삼성이 2차전지 사업의 성장지원을 본격화하려는 채비를 갖추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왼쪽부터 한종희 삼성전자 세트(SET)부문장 부회장과 경계현 DS부문장 사장. (삼성전자 제공)© 뉴스1


이 부회장의 위기의식은 전날 언론에 배포한 인사 자료에도 잘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인사 자료에서 "미래를 대비한 도전과 혁신을 이끌 인물을 세트사업, 반도체 사업의 부문장으로 각각 내정하는 인사를 통해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구도 하에 진용을 새롭게 갖춰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종희 부회장이 세트사업 전체를 리딩하는 수장을 맡아 사업부 간 시너지를 극대화함은 물론 전사 차원의 신사업, 신기술 등 미래 먹거리 발굴을 통해 세트 사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경계현 사장을 DS부문장에 선임한 배경에 대해서는 "반도체사업은 기술리더십과 비즈니스 역량이 검증된 경영진을 전면에 내세워 사업 경쟁력을 더욱 제고토록 했다"며 "반도체사업의 기술 리더십을 발휘하며 부품 사업 전반의 혁신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 다툼과 이로 인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면서 경영환경이 내년에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닥쳐올 위기를 직감한 이 부회장이 많은 고민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이 변화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과감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하면서, 향후 이어질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지난 14일 출국한 이 부회장은 미국 내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입지 등을 매듭 지었다. 2021.11.2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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