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70년' 노태우 이어 전두환도…5·6공화국 역사속으로 저물다

12·12 이어 5·18 파란만장했던 1980년대 군부 통치 역사 뒤안길로

퇴임 후 '역사적 심판대'로…全, 공보다 과에 대한 비판 대부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별세한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두환 전 대통령도 23일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격동의 1980년대를 채웠던 제5공화국과 제6공화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게 됐다. 

오랜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였던 두 전직 대통령은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군부 실세로 등장한 뒤 연이어 집권까지 하며 1980년대를 파란만장하게 보냈다.

이날 전 전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군(軍) 출신으로 대표되는 5공화국과 노 전 대통령의 6공화국도 완전히 마감된 것이다.

우선 전 전 대통령의 '철권 통치'로 대표되는 5공화국은 공(功)보다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항쟁 유혈진압, 민주주의 억압, 정경유착 및 비자금 조성, 권위적인 군사 문화 확산 등 수많은 과(過)에 있어 자유롭지 않다.

특히 5·18 무력진압과 헌정을 파괴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하면서 국정 실권을 장악한 탓에 정권의 정당성 측면에서도 여전히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198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친 전 전 대통령이 나머지 여생 대부분을 '역사의 심판대'에서 보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퇴임 직후 전 전 대통령이 국회의 '5공 청문회'에 나와 5·18 진압에 대해 "자위권 발동"이라고 답한 데 대해 이철용 평화민주당 의원이 "살인마"라고 비판한 것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그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상징적 장면으로 남는다.

그나마 재임 동안 경제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있는 편이다.

1970년대 말 중동발 경제붐과 1980년대 중반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 호황'의 영향도 있었지만, 김재익·사공일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 관료에 전권을 위임해 고도성장을 이뤘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6공화국도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무력진압에 있어 전 전 대통령의 5공화국과 밀접한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다만 6·29 선언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로 집권한 노 전 대통령은 정권의 정당성은 물론 '5공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제6공화국을 열었다는 성과는 인정받는 편이다.

또 재임기간 중 인권제도 개선, 민주주의 관행 정착, 북방외교를 통한 경제영토 확장, 남북관계 화해기반 마련, 경제성장 등의 성과로 5공화국에 비해 '공'에 대한 평가도 적지 않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이 아들 노재헌 변호사를 통한 유언으로 5·18을 비롯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자신이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끝내 사과하지 않고 사망한 전 전 대통령과의 차이점도 역사적인 평가가 뒤따를 전망이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재벌들로부터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챙기는 등 정경유착을 일삼았다는 점은 역사적인 과오로 남았다. 우리나라가 '뇌물공화국', '재벌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이때 나왔다. 

1기 신도시 택지 분양 특혜를 대가로 한보그룹로부터 150억원의 비자금을 건네받은 '수서 사건'은 6공화국의 최대 비리로 꼽힌다. 1995년 노 전 대통령은 4000억원대 비자금을 축재한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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