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포기하지 못하나

 

'김종인=선거승리' 공식에 위기상황 '소방수' 역할 제격

金 비토 예견된 '김병준 영입안'에 '金평가절하' 해석도

 

#1. "선생님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2012년 5월, 독일에서 여행하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마디였다고 김 전 위원장은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회고했다. 보름 후 서울의 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박 전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분석해보니 '경제민주화'가 젊은 유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민주화는 저보다 선생님이 더 상징적이지 않나"라며 대통령 후보 경선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2. 2016년 총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당을 수습해 달라며 밤중에 연달아 세 번이나 찾아와 새벽 2시가 되도록 자리를 버텼다는 일화도 김 전 위원장은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 할아버지 기일이라 산소에 가야 하는 김 전 위원장에게 "날이 밝을 때까지 여기에 있다가 함께 산소에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구상하는 선대위 인선에선 변하지 않는 상수가 있다. 김종인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이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영입을 두고 윤 후보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간 파열음이 이어지고 있지만 윤 후보의 김 전 위원장에 대한 구애만은 변함이 없는 분위기다.

윤 후보 측에서 "인사권자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지난 17일엔 후보가 직접 인선안을 들고 김 전 위원장을 찾아 '허락'을 구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윤 후보에게 "김병준 전 위원장을 빼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예정됐던 18일 선대위 출범이 다음주 중반으로 미뤄진 데는 두 사람 간 이견이 좁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012년 9월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특별위원회 위원장. 2012.9.5/뉴스1


◇포기 못하는 윤석열…'김종인=선거승리'

윤 후보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김종인=선거 승리'라는 공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 전 위원장은 2012년 총선·대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2016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데 이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재건을 위해 투입된 지 10개월 만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압승'이란 결과물을 내놨다.

특히 무너져 가는 당을 화려하게 소생시키면서 '김종인 매직'이란 찬사와 더불어 '정당 소생술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2002년 노무현, 2007년엔 이명박 후보를 자문했고 2012년과 2017년엔 각각 박근혜,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킹 메이커'로 불린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을 독일 서부 오버하우젠해양생물박물관의 점쟁이 문어 '파울'에 비유했다.

파울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당시 두 팀 국기가 그려진 유리 상자에 각각 홍합을 넣고 먹이를 주었을 때 승리팀의 국기가 그려진 상자 안의 홍합을 먹는 방식으로 승리팀을 적중시키며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미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공식이 대중에게 먹힌다"며 "반대로 김 전 위원장이 될만한 후보만을 민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1월27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지도부 총사퇴를 선언한 뒤 김종인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2016.1.27/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위기상황에서 역할하는 '소방수'

여기에 본선에서 윤 후보 본인이나 배우자 김건희씨 등 처가를 둘러싼 중대 리스크가 터져 지지율이 휘청일 경우 김 전 위원장의 '소방수'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당 경선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 상승세를 탈 동안에는 문제가 없으나 위기 상황에선 김 전 위원장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윤 후보 측 한 관계자는 "문제가 터졌을 때 나서서 우왕좌왕할 수 있는 분위기를 한 번에 정리하는 역할엔 김 전 위원장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 김종인 비토 예견된 '김병준 영입안'…왜?

반면 김 전 위원장의 비토가 예견됐던 김병준 전 위원장 영입 등 일부 인선을 밀어붙이려는 윤 후보를 두고선 윤 후보가 실질적으론 김 전 위원장의 역할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선거 때마다 간판만 바꿔 나오는 위원회 설치로는 국민통합이나 미래비전같은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또 김병준 전 위원장이나 김한길 전 대표 같은 거물급 인사가 선대위와 별도로 꾸려지는 후보 직속의 위원회 수장에 오를 경우 자신의 운신 폭이 제한되고 선거전략 수립에서도 혼선을 빚을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병준 전 위원장과는 최근까지 서로에게 독설을 퍼붓는 등 악연이 있다.

4·7 재보선 직후 퇴진한 김종인 전 위원장이 당 중진들의 당권 경쟁을 두고 "아사리판"이라고 하자 김병준 전 위원장은 "어린애 같다"고 쏘아붙였다.

이후에도 "윤 후보가 뇌물 받은 전과자와 손을 잡을 리 없다"(김병준), "진짜 하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김종인)이라고 상대방을 깎아내렸다.

당 관계자는 "윤 후보 측에서 후보에게 '인사권은 후보에게 있고 김 전 위원장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윤 후보 측 입장에선 김 전 위원장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김 전 위원장을 '디스'(반대)하는 급을 반드시 데려와야 할 것"이라며 "윤 후보가 김병준 전 위원장이나 김한길 전 대표 영입에 대해 물러서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일 당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김병준 세종시당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외 시도당위원장 간담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0.12.1/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윤 후보는 전날(19일) 기자들에게 두 사람 영입에 대해 "제가 (선대위에) 모시려고 한 것이지 인간적 친소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분들(김병준·김한길) 안 지 얼마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의 "과거의 인연, 개인적 친소관계를 갖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쓴소리를 맞받은 것이다.

윤 후보는 또 "김병준 전 위원장은 도와준다고 말씀했고, 김한길 전 대표는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인데 그래도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2김(金) 영입'을 관철시킬 뜻을 분명히 했다.

◇'후보 비서실장'으로는 장제원 거론

김병준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상임선대위원장-공동선대위원장'이란 3선대위원장 체제에서 자신보다 한 단계 낮은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다고 해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진 않을 거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당 관계자는 "상임선대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을 받아치는 모양새가 되면 더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전 위원장이 김종인 전 위원장 아래의 상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할지도 관건이다. 두 사람 모두 현 국민의힘 전직 비대위원장이라는 점도 껄끄러운 관계 요인이다.

권성동 사무총장 임명으로 공석이 된 후보 비서실장엔 경선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좌장 역할을 하다 아들 문제로 중도 사퇴한 3선 장제원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윤 후보 경선 캠프 일부 인사를 '파리떼', '자리 사냥꾼'이라고 규정하며 날을 세워왔는데, 과거 두 사람은 "노욕에 찬 기술자 정치"(장제원), "홍준표 꼬붕(부하)"(김종인)이라며 비방전을 벌였다.

(왼쪽부터) 장제원, 권성동,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0.11.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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