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합의금 규모 팽팽한 신경전…'조단위' vs '천억원대'

LG "법적으로 손해배상 금액 최대 200% 징벌적 손배 가능" 압박

SK "과거 사례 살펴보라…2년 내 합의하면 돼, 서두르지 않겠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LG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합의금 규모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16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이번 ITC의 최종 결정 이전, LG는 2조5000억원에서 3조원가량의 합의금을, SK는 자회사 상장 지분 일부를 포함해 적게는 1000억원대, 많게는 5000억~6000억원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ITC의 최종 결정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LG가 더욱더 높은 수준의 합의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LG는 미국 연방비밀보호법과 최근 판례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소송이 델라웨어 민사소송까지 가게 될 경우, 실제 손해액에 징벌적 손해배상액까지 포함해 9조원 이상을 SK가 부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LG가 줄곧 강조하고 있는 합의금 산출 기준은 미국 연방비밀보호법(DTSA)이다. 이 법에서는 실제 입은 피해 및 부당이득, 미래 예상 피해액, 징벌적 손해, 변호사 비용을 배상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LG는 '과거의 피해 및 부당이득'과 관련, SK가 본격적으로 영업비밀을 탈취한 2017년에서 2019년에만 약 40조원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의 수주물량만 20조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장에서는 현대차 및 유럽 수주물량을 감안하면 현재 수주잔고는 550GWh 수준, 약 70조원 규모로 추정한다.

'미래 예상 피해액'과 관련, LG는 SK의 과거 수주 실적을 기반으로 하면 보수적으로 예측해도 향후 5년간 최소 50조원 이상의 수주를 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LG는 그 근거로 지난 1월29일 SK이노베이션이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2025년 글로벌 시장점유율 10%, 영업이익률은 높은 한 자릿수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는 점을 든다. LG는 해당 점유율을 기준으로 하면 시장에서 통용되는 로열티인 약 5%만 적용한다고 가정해도 미래 피해에 대한 배상액 규모만 수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크레디트 스위스는 ITC 최종 결정 직후 양사의 합의금이 5조원 이상이 될 수 있으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LG가 유럽에서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특히 미국 연방지방법원 소송에서 통상 75~125%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판결되며, 최대 200%까지 적용할 수 있다. 최근 모토로라와 중국 하이테라의 영업비밀 소송에서도 최대기준인 200%가 적용된 바 있다. 이 소송은 모토로라의 연구개발(R&D) 직원 3명이 무전기 관련 영업비밀을 탈취해 하이테라로 이직한 사건이었다.

만약 LG와 SK의 소송에서 손해배상 금액이 3조원, 징벌적 손해배상이 100%만 나와도 전체 배상금액이 6조원, 200%가 되면 9조원으로 치솟는다는 뜻이다.

LG는 지난 11일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의 손해배상 기준에 따르면, 법적으로는 손해배상 금액의 최대 200%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며 "다만 SK와의 협상 금액에 이걸 포함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SK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며 상대방을 압박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연구원들이 배터리 셀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반면 SK는 역대 ITC 영업비밀 손해배상액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배상액 추산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지금까지 미국에서 진행된 영업비밀 소송을 참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SK에 따르면 상위 10개 소송의 벌금액 평균은 약 2억2770만달러로 약 2510억원 수준이다. 최고액은 2011년 듀퐁과 코오롱 간의 소송에서 나온 9억1999만달러로 약 1조139억원이며, 이도 2014년 파기환송되면서 결국 2850억원의 합의금으로 마무리됐다. 후순위로 갈수록 금액은 크게 낮아져 2위는 2017년 에픽시스템즈와 타타컨설턴시서비스 간의 4억2000만달러(약 4630억원). 3위는 2억6500만달러, 4위부터 6위까지는 1억달러 초반대로 낮아진다.

특히 SK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규모, 재무상태 등을 고려할 때 수조원대 배상금은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라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사업 실적은 매출 1조6102억원, 영업적자 4265억원으로 아직 손익분기점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1일 ITC 판결 이후 줄곧 "합리적인 조건이라면 합의를 위한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양사는 이번 ITC 판결 이전에도 수차례 만나 합의여부를 두고 협상을 벌였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번 패소로 SK가 더욱 불리해진 입장에 처하게 됐음에도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는 데에는 합의금을 최대한 낮춰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특히 ITC가 SK이노베이션과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계약한 폭스바겐에는 2년, 포드에는 4년간 수입금지 조치를 유예하면서 SK이노베이션은 합의할 시간을 벌었다고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미국 대통령 심의 기간인 60일 내 합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시각이 많은데, 향후 항소 절차도 고려하고 있고,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2년의 기간을 LG와 합의할 수 있는 기간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는 오히려 LG가 지난 11일 기자들을 대상으로한 콘퍼런스콜을 열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협상에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등 합의를 서두르려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LG는 '우리야말로 급할 게 없다. SK가 시간을 끌수록 SK이노베이션과의 협상뿐만 아니라 배터리 사업 수주에서도 한층 더 유리해진다'라며 받아치고 있다.

특히, 포드와 폭스바겐은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었던 업체라는 점에서, 대체 공급자로서 LG를 선택할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라는 점을 LG는 상기시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에서 유일하게 자동차용 배터리를 상업생산하고 있는 업체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LG에너지솔루션이 언론을 대상으로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경영전략총괄 장승세 전무는 "두 회사 모두 SK가 수주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의 고객사였다. 대체 기간 중에 공급업체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그 후보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의지를 비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LG와 SK가 당분간 합의금 규모를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라며 "ITC의 최종 결정에도 불구하고 양사 간 입장차가 워낙 커 합의점을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LG화학 배터리사업부문(현 LG에너지솔루션) 연구원들이 리튬이온 배터리셀을 살펴보고 있다.(LG화학 제공) © 뉴스1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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