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 두 번째 십자가 안긴 박용만 "한반도 평화 염원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 프란체스코 교황 만나 '철조망 십자가' 선물

박 명예회장 '구르마 십자가' '수녀복 베개' 이어 세 번째 기획

 

"전쟁은 멈춘 뒤 오래됐지만 남북의 대립과 갈등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생각과 시선을 조금은 바꿔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열린 '철조망, 평화가 되다' 전시회 개관식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명예회장(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 이사장)은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사용해 십자가를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유럽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행사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하고, 철조망 십자가 중 하나를 교황에 선물했다.

31일 재계 등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이 기획해 제작한 십자가를 교황에 안긴 것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지난해에는 동대문 시장에서 노동자들이 100년가까이 사용하고 있는 '구르마' 1대를 해체해 나무 십자가 10개를 만들었고, 그중 하나를 교황에게 보냈다. 로마 교황청은 선물 받은 십자가를 성모승천대축일(8월15일)에 특별봉헌했다고 한다.

나무공예작가인 최기 강원대교수와 학생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십자가로, 박 명예회장은 문 대통령과 염수정 추기경에게도 하나씩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개관행사에서 박 명예회장이 앞서 만든 나무 십자가 이야기부터 꺼냈다. 문 대통령은 "가장 가난한 노동의 십자가라고 할 수 있는 그 십자가를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라고 불렀다"며 박 회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십자가를 접했을 때의 감동을 전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이 지난해 프란체스코 교황에 선물한 나무 십자가. 박 명예회장은 동대문 시장의 '구르마'를 해체해 나무 십자가 10개를 만들었고, 문재인 대통령과 염수정 추기경에게도 하나씩 선물했다.<박용만 명예회장 페이스북>© 뉴스1


이번 철조망 십자가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이번 로마 전시까지 약 10개월이 걸렸다. 박 명예회장은 올해 1월 처음 철조망 십자가 기획을 시작했고, 동해안 군 경계 철책 철거사업에 따라 강원도 고성군의 DMZ 노후 철조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권대훈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와 학생들은 얽혀있던 철조망을 자르고 풀어낸 뒤, 불에 달구고 두들겨 136개의 철 십자가를 만들었다. 박 회장은 일련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을 만들었고, 직접 내레이션을 맡는 열의를 보였다.

그는 영상에서 "하나였던 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 2개의 나라로 살아온 시간, 그 아픈 2개의 68년을 합쳐 136개의 십자가를 만들었다"며 "십자가가 우리에게 이제 그만 평화 속에 있으라고 말한다"고 했다.

이번 로마 전시회는 통일부가 주관하고, 손현숙 전 로마미술대 교수가 자문을 맡았다. 개관행사에서는 한반도 모양으로 전시된 십자가에 LED 촛불으로 점등하는 의식이 진행됐다.

지난 29일(현재시간)이탈리아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에서 열린 '철조망, 평화가 되다' 전시회에 한반도 모양으로 십자가 136개가 전시돼 있다. (청와대 제공) © 뉴스1


문 대통령 부부와 피터 턱슨 추기경,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흰 옷을 입은 한국과 이탈리아 어린이 복사(服事)들로부터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촛불을 건네받은 뒤 이를 빈자리에 놓아 작품을 완성하는 행사였다.

문 대통령은 서울 위치에, 턱슨 추기경은 평양 부근에, 이 장관은 백두산, 김 여사는 한라산 부근에 각각 촛불을 내려놓은 뒤 눈을 감고 잠시 기도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이 십자가는 그 의미에 더해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수많은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염원과 이제는 전쟁을 영원히 끝내고 남북 간에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가 담겨 있다"라고 평가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 명예회장은 '실바노'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아픔들을 선한 시선으로 보듬고 위로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갈 계획이다.

나무 십자가가 첫 번째, 이번 평화의 십자가가 세 번째 프로젝트다. 박 명예회장의 진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로는 수녀복으로 기도방석과 베개를 만든 것으로, 올해 3월 전시회를 열었다. 박 명예회장은 기도방석과 베개를 난치병 환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기증받은 수녀복으로 만든 베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이 기획하고 김영진(차이킴) 한복 디자이너가 제작했다.<'수녀복, 기도와 치유로 부활하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뉴스1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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