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월셋집→곧 강제퇴거…이태원 자영업자의 10개월

[골든타임 지난 이태원上] "영업 시작 반년도 안 돼 코로나 터져"

 

"경제 사정 나빠지면서 파혼까지…손실보상제 소급적용 절실"

 

"혹시나 나쁜 마음먹지 말고 20개월 된 애를 생각하라고. 주위로부터 이런 말을 매일같이 듣고 있어요. 장모님이 애기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볼 면목이 없어서 솔직히 피해 다니고 있네요."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김진열씨(가명)는 정부의 집합금지 명령으로 약 10개월간 영업을 못 하고 있다. 부가세 포함 월 4300만원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전셋집에서 월셋집으로 이사를 왔고 상가 보증금 5억원은 이제 1억원 정도만 남았다. 최근에는 임대인에게 내용증명서까지 받아 곧 강제로 퇴거 조치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는 지난 2019년 8월부터 이태원에 터를 잡았다. 20대부터 일만 해왔다는 그는 30대가 돼서 이태원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춤을 추고 대화할 수 있는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김씨는 잘되던 장사를 접고 양가 부모님 집을 담보로 5억원을 대출받아 이태원에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장사를 시작하고 5개월 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초반에는 그래도 언젠가 문을 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와 자신이 모아둔 전 재산을 임대료로 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버팀목 자금을 두 번 신청했지만, 소상공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렇게 약 9개월간 임대료를 내지 못했다.

이미 6억원 가량을 손해 봐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안 보인다는 그는 "이태원 자영업자들은 응급수술이 필요한데 정부는 계속 반창고만 붙여주고 있다"며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세계음식거리에서 정부를 향해 방역수칙 재검토를 호소하고 있다./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K 방역'으로 경제 성장률 OECD 1위인데…자영업자는 거리로 내몰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는 한국을 "효과적 방역 조치로 회원국 중 위축이 가장 적은 국가"라고 평가했다. K방역이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희생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영업자들은 점점 거리로 내몰렸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으며, 임대료가 비싼 지역의 피해가 심각했다. 대표적인 상권인 이태원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26.7%였는데 이는 서울 중대형 상가 공실률인 8.8%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미 명도소송장을 받은 이태원 자영업자 구기태씨(가명)의 상가도 곧 공실이 될 예정이다. 2018년 12월에 장사를 시작한 그는 집합금지 명령으로 약 10개월간 최소 월 2000만원씩 손해를 봤다고 토로했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파혼까지 했다. 구씨는 '쌀'을 사흘에 한 번꼴로 먹는다며 대부분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했다.

그 역시 김씨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가족들의 안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구씨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원래 한 달에 한 번씩 연락하던 친구들도 이틀에 한 번씩 전화를 해서 '이상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신속한 지원만이 자영업자가 사는길'이라고 적힌 팻말./뉴스1 © News1 최현만 기자


◇"이제 임대료 못 내서 나가야 하는데…손실보상제 '소급 적용' 필요"

문제는 우리나라가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 보상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영국은 월 평균 수입의 최대 80%, 독일은 기존 매출액의 75%와 고정비의 90%까지 지원한다. 프랑스 또한 최대 월 1500유로를 지급한다.

정부와 여당이 뒤늦게 자영업자들을 위해 손실보상제를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지급 방식과 규모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임대인들로부터 내용 증명서, 명도 소송장 등을 받아 곧 영업을 접어야 한다는 자영업자들은 손실보상제의 소급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어차피 곧 퇴거 조치를 당해 빚만 떠안고 나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소급적용 없이는 손실보상제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구씨는 "손실보상제를 시행할 때쯤에 우리는 영업을 그만두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영업하지 말라고 해서 빚더미를 떠안았는데 소급적용 없이 새로 오는 자영업자들에게만 적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가 소급적용 안 되는 손실보상제를 시행하고 장사를 찔끔 허용해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보다는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을 먼저 구해주는 '핀셋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가 한산하다./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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