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원내대표·국무총리…'친박 핵심' 이완구 전 국무총리 별세

3선 국회의원·충남도지사 지낸 '충청 원로'…'세종시 수정안' 사태 朴과 가까워져
'성완종 리스트'로 '최단기간 재임' 불명예 퇴진…대법원 '무죄' 선고로 명예회복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국무총리를 지낸 이완구 전 총리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으로 투병해오다 14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이 전 총리는 1950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대전중·양정고를 거쳐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74년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 근무한 뒤 최연소 경찰서장과 충북·충남 경찰청장을 지냈다.

그는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 김종필 전 총리의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자민련에서 대변인·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거친 그는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재입당했다. 

그러나 이른바 '이적료 파문'에 휩싸이면서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2006년 6월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반발해 지사직을 던졌다.

그러다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서 77.40%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하며 19대 국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세종시 수정안 사태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친박'(박근혜)계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2014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친박 핵심'으로 꼽혔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2015년 2월 총리직에 올랐지만,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63일만에 '최단 재임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했다. 이후 대법원은 2017년 12월22일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무죄 확정 선고를 받았다.

대표적인 충청 정치인으로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리며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이었던 이 전 총리는 불명예 국무총리 퇴진과 함께 대권의 꿈도 접게 됐다.

대법원 무죄 선고 이후 이 전 총리가 21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과거 경쟁자였던 홍문표 의원의 선거유세에 참여해 지지를 선언해 홍 의원 당선에 힘을 보탰다.

이 전 총리는 2012년 1월 다발성골수종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고, 골수 이식을 받고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암이 재발에 투병을 계속해왔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투병을 해오던 이 전 총리는 이날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1950년 충남 청양 출생 △양정고, 성균관대 행정학과, 미국 미시건주립대 석사, 단국대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15회)·경제기획원 △홍성경찰서장 △LA총영사관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 △15·16·19대 국회의원 △UCLA 교환교수 △2006~2009년 충남도지사 △2010년 새누리당 충남도당 명예선대위원장 △새누리당 원내대표 △제43대 국무총리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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