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에 임신·마흔에 아이 가진 '비혼주의자'…또다른 세상을 만나다

[회복자들]⑥11살 아들 둔 지혜씨 "'잘 길러야 한다' 독함이 먼저"

 

45세 미혼모 미경씨 "아이로 괴로움과 외로움 위로받아"

 

가정에서 불행했던 김지혜씨(가명·30)는 10대에 집을 나와 식당 일을 했다. 당시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일하다 만난 남자친구와 '행복한 가정'을 약속했다.

18살, 임신을 했다. 너무 어린 나이였다. 임신중절은 잘 알지 못했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남자친구와 아이를 낳기로 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러나 임신 6개월 차 남자친구는 돌연 양육을 거부했다. 둘은 갈라섰다. 남자친구는 떠났고 여전히 그의 생사조차 모르지만 아이가 지혜씨의 곁에 있다. 지혜씨는 홀로 아이를 낳아 지금껏 키웠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 미혼한부모지원센터에서 지혜씨를 만났다. 현재의 지혜씨에게 과거 상처의 흔적이 남았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자의 선입관이었다.

지혜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어두운 청소년기의 아픔을 떨쳐냈다. 11살 아들을 곁에 둔 지혜씨는 '회복자'였다.

◇"어두웠던 청소년기…아이 갖게 되면서 미래 꿈꿔"

아이를 갖기 전 지혜씨는 미래를 꿈꾸기 힘들었다. 지혜씨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남편 병원 빚을 지고 아이 셋을 홀로 어렵게 키웠다.

지혜씨는 "오늘 하루, 내일 하루만 바라보는 삶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가출 후 식당에서 하루 12시간 일하고 월 200만원을 받았는데 '10년 일하면 큰돈이 되겠구나' 이런 생각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이를 갖고 나서 비로소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꿈보다는 아이에게 보여지는 것 때문에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게 됐다"는 그는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혜씨는 4년 전 경기도에 작은 비누공방을 차렸다. 아이를 홀로 돌보면서도 생계를 이어나갈 방법으로 자영업을 생각한 것이다. 그는 "미혼 한부모를 위한 취업 기회가 있긴 했지만 전문적인 일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혼자가 된 지혜씨는 출산과 육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만삭 때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급여를 받은 이력 때문에 미혼모 시설에 들어가지 못했고 출산 직전에야 입소가 허락됐다.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지혜씨는 "외로움보다도 '잘 길러야 한다'는 독함이 먼저였다"고 설명했다.

약 2년의 시설 생활 후 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6살 때쯤 정신을 차려보니 미혼모 시설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씨는 '진짜 독립'을 위해 살던 지역을 떠나 경기도로 거처를 옮겼다.

이날 마침 지혜씨는 사회적 기업과 협업 신상품을 출시하기 위한 회의차 서울에 방문했다. 당차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학급 임원이 된 아들 때문에 지혜씨는 학부모회에서도 활동한다.

지혜씨는 "아이 덕분에 '홀로서기'라는 제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창업을 해서 매장을 꾸려나가고 있다"며 웃었다.

◇"'비혼주의'였지만…아이 통해 괴로움·외로움 위로받아"

"임신하게 된 것을 알고 깜짝 놀라긴 했지만 곧 축복으로 다가왔어요. 아이를 통해 혼자인 제 괴로움과 외로움을 많이 위로받았습니다."

박미경씨(가명·45)는 5살 아들을 홀로 키우는 미혼모다. 나이 마흔에 아이를 갖게 됐다. 남자친구와는 이미 결별한 뒤였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 미경씨는 '비혼주의자'였다.

© News1 DB


미경씨는 "내가 부족한 인간인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통해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나아져야겠다, 나아져 간다'는 성장의 느낌을 받는다.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가 웃음, 다정한 말과 애교로 가르치더라"고 전했다.

아이를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게 있었다. 공연계에서 활동했지만 수입이 적었던 미경씨도 비누 공방을 열었다. 서울의 공연장들을 뒤로하고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어머니가 사는 경기도로 이사했다.

그는 "꿈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미경씨는 "임신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렸더니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 축하가 살면서 가장 좋은 기억이 됐다. 하지만 임신과 아이 아빠와의 결별을 상처로 생각하는 미혼 엄마들도 많다"고 전했다.

◇"미혼모 향한 편견…'옆집 사는 사람'으로 봐줬으면"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는 지혜씨와 미경씨였지만, 이들도 미혼모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었다. 생계와 육아,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 주된 어려움으로 꼽힌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한부모 2500명 설문) 응답자들은 자녀를 양육하며 경험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양육비·교육비 부담'이라고 답했다.

지혜씨와 미경씨도 출산 비용 마련부터 힘들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지혜씨는 "이제는 보육뿐만 아니라 아이를 가르치고 모르는 것을 알려줘야 해서 더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편견보다도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더 두렵다고 했다.

지혜씨는 "어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이런 아이들이랑 못 놀도록 한다"면서 "오늘도 어떤 엄마가 동네 아이들과 놀던 자기 애를 쏙 데리고 가버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저희 아이가 아직 '아빠는 멀리 일하러 갔다'고만 알고 있는데, 아이 친구 엄마가 '아빠가 집에 잘 안 들어오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고 푸념했다.

지난해 기준 미혼모‧부는 전국에 총 2만7245명이 있다. 2015년 3만5088명에 비해 22% 정도 줄었다. 30세 미만 미혼모‧부의 수는 4517명 정도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혜씨와 미경씨는 아이가 회복의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평범한 삶'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미경씨는 "한쪽은 미혼모를 도와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다른 쪽에서는 '세금 축낸다'고 보는 양극단적 시선이 있다"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옆집 사는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김지혜씨와 박미경씨는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아동 양육에 필요한 물품과 자립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미혼 한부모는 홀트아동복지회 미혼한부모지원센터의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2018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 갈무리. © 뉴스1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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