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반도체' 배터리…삼성 240조 투자서 소외된 이유는

삼성SDI, 美 신규투자 추진 단계…"신중한 접근 필요"

 

성장 잠재력은 반도체 능가…'수주 산업' 특성도 고려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10여일만에 3년간 24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신규투자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배터리 시장에 대한 청사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삼성 내에선 삼성SDI가 전기차용 배터리를 포함한 2차 전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최근 발표된 '3개년 투자계획' 내에서 반도체·바이오 등에 비해 배터리 시장과 관련된 투자 계획이 상대적으로 미비해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이 최근 코로나19 이후 미래준비를 위해 발표한 3년간 240조원 투자계획의 중점 분야는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신성장 IT 등 4가지다. 이는 앞서 2018년 발표한 AI, 바이오, 5G, 반도체 중심 전장부품 등의 '4대 미래성장사업'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이 중에서도 반도체와 차세대 통신 분야는 삼성이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서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바이오나 인공지능(AI)과 로봇 같은 신성장 IT 분야는 후발주자로 추격해야 하는 위치다.

이들 4가지 사업 외에 삼성은 디스플레이·배터리 분야에 대해서는 "기존 제품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 리더십을 강화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삼성이 지난 24일 발표한 투자 계획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와 백신에 할애돼있는 것을 두고 재계에선 "그만큼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부문이 후순위로 밀려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았다.

실제 삼성의 투자 계획이 언론에 공개된 지난 24일 오후 3시 이후 삼성의 주요 전자관련 계열사 주가는 삼성전자(3.14%), 삼성전기(1.78%), 삼성SDS(1.48%) 등 대부분 상승마감했으나 삼성SDI만 3.37% 하락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의 주식코너 내 삼성SDI 종목토론방에서 한 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이 반도체에 투자하는 것의 10%라도 배터리에 투자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는 말까지 던졌다.

재계에선 현재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 삼성이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사업이 반도체와 백신을 포함한 바이오 분야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한다.

청와대가 이 부회장 가석방 관련 공식 브리핑에서 "반도체와 백신에 대한 역할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있다"고 언급한 만큼 삼성 입장에서도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긍정적인 결과로 정부에 화답해야 한다는 상당한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240조원 투자 계획 내에 배터리 분야도 포함돼 있긴 하다"면서도 "구체적인 사업분야별 투자 계획은 구체화되고 있으나 세부적으로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충북 청주시 LG에너지솔루션 오창 제2공장에서 열린 K-배터리 발전전략 보고 'K-배터리, 세계를 차지(charge)하다'에 참석, 행사에 앞서 K-배터리 전시장을 찾아 삼성SDI의 전고체 전지를 살펴보고 있다. 2021.7.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을 감안할 때 삼성도 배터리 분야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진 않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2025년에 1800억달러(약 211조원)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 15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삼성이 배터리 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가 적지 않다는 점은 총수인 이 부회장 행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13일 충남 천안 삼성SDI 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포함한 주요 경영진과 회동을 가진 바 있다.

국내 1~2위 대기업의 '오너 3세'가 사업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단독 회동을 진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계에 상당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는데, 만남의 장소가 삼성SDI 연구소였던 것이다.

2020년 7월에는 이 부회장이 '답방' 형태로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했는데, 이는 삼성 총수로서 현대차 사업장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한 자리였다. 이 부회장은 자율주행차와 수소전기차 등을 시승하며 배터리·전장 등 주요 사업부문에서 현대차그룹과의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분야가 전 세계적으로 향후 급팹창이 예상되며 우리나라의 차세대 전략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선 대체로 업계의 이견이 없다는 평가다. 정부도 지난 7월 배터리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K-배터리 발전전략'을 발표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5일 오전 삼성SDI 울산사업장을 방문, 전영현 사장의 안내로 이차전지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1.7.5/뉴스1

삼성의 240조원 투자 계획에서 배터리 분야가 상대적으로 소홀해보이는 것을 두고 재계에선 삼성SDI가 현재 처한 상황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삼성SDI는 미국에 신규 배터리 공장 건설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인 상태다. 여전히 현지 사업 파트너와 투자계획, 부지 등은 미정이지만 이 부회장의 복귀로 연내에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미국에 투자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현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상당한 고용창출 효과를 내는 기업 입장에선 현지에서 최대한 인센티브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물밑작업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 최대한 언급을 삼갔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삼성SDI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5위 업체로서 국내외 경쟁사들을 추격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또 전기차 배터리 시장 구도가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 중심으로 형성돼있기 때문에 수주를 따내야 할 '을(乙)'의 입장에선 여러 사안에 대해 함구해야 하는 사업적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경쟁 업체들의 행보와 비교되는 삼성SDI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다른 배터리 제조사들이 국내외에서 잇딴 화재, 리콜로 잡음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도 조인트벤처(JV)나 신규공장 건립 등의 활발한 대외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달리 삼성SDI는 여전히 '정중동(靜中動)'을 유지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전영현 사장을 포함한 삼성SDI 경영진은 배터리 시장이 한단계 발전하기 위해선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삼성SDI도 배터리가 소비자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술경쟁력에 중점을 두는 내실화 작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8.19/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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