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유해 78년 만에 고국으로

14일 카자흐 현지로 보훈처장 등 정부 특사단 파견

15일 광복절에 공군 특별수송기 편으로 국내 봉환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의 주역 여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12일 청와대와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정부는 제76주년 광복절(15일)을 맞아 홍 장군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해 황기철 보훈처장이 이끄는 특사단을 오는 14일 홍 장군 유해가 묻혀 있는 카자흐스탄으로 파견할 계획이다.

당초 우리 정부는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맞은 작년에 키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 대통령 방한과 함께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추진하려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 때문에 올해로 연기됐다.

홍 장군은 1878년 평양에서 태어나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맞서 의병활동을 이끌었다.

1910년 일제의 한일강제병합 뒤 만주로 건너간 홍 장군은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대한독립군을 조직해 국내 침공 작전을 벌였고, 1920년 6월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700여명의 독립군 연합부대를 지휘해 일본군 1개 대대를 섬멸하는 전과(봉오동 전투)를 올렸다.

봉오동 전투는 당시 독립군 연합부대의 첫 승전으로서 이른바 '독립전쟁의 제1회전'으로 불린다.

홍 장군은 봉오동전투 이후 같은 해 10월엔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북로군정서와 연합해 지린성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재차 대승(청산리 대첩)을 거뒀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극동지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당시 소련은 한인들의 '스파이' 활동을 경계, 극동지역 내 한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기로 결정했고, 이 시기 연해주에 거주하던 홍 장군 또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야 했다.

홍 장군은 이후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75세를 일기로 숨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1994년부터 카자흐스탄 현지의 홍 장군 묘소를 조사하고 현지 당국과 유해 봉환 협의를 진행했던 상황. 그러나 당시엔 북한과 현지 고려인 사회의 반대로 관련 논의가 구체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보훈처를 통해 홍 장군 묘역 정비 사업을 지원하고, 묘소 주변에 강제이주 기념비 등을 건립하는 등의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정부는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스흐탄 방문 및 토카예프 대통령과의 한·카자흐 정상회담을 계기로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카자흐 측에 정식 요청했다.

카자흐 정부 역시 같은 해 12월 토카예프 대통령 방한 당시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추진하겠단 의사를 밝혔고, 이후 양국 정부 간은 물론 현지 고려인 단체 등과의 협의 또한 원만히 진행되면서 유해 봉환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홍 장군 유해는 14일 카자흐 현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단에 의해 수습된 뒤 입관 절차를 거쳐 제76주년 광복절인 15일 공군 특별수송기편으로 국내로 옮겨진다.

유해 수습에 앞서 크즐오르다 홍 장군 묘역에선 추모식이 엄수된다. 추모식엔 우리 특사단을 비롯한 양국 정부 관계자, 고려인협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보훈처는 홍 장군 유해 봉환에 따라 대전국립현충원 현충문 앞에 추모분향소를 설치, 16~17일 이틀간 일반국민을 상대로 하는 추모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상에서도 15~20일 추모페이지가 운영된다.

홍 장군의 유해는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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