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년이 노숙하냐고요? 가족 모여사는 원룸, 감옥 같아"

폭염·코로나로 인해 안전하게 쉴 공간 없어…쉼터 필요

정신질환 의료지원·복지 등 '찾아가는 서비스' 더욱 늘려야 

 

"2013년에 서울역에 계시던 아저씨가 6년 뒤에도 그 자리 그대로 계신 거예요. 간질과 조현병 등 여러 정신 질환이 있었는데 적극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거죠."

60대 노숙인 김모씨의 얘기다. 김씨는 40여년간 노숙을 하며 길거리를 전전했지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도움의 손길이 없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거부하면서 치료는 계속 미뤄졌다.

지난해 노숙인전담경찰관을 맡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박아론 경위의 설득 끝에 병원 치료를 받게 됐지만 결국 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폭염이 겹쳐 위험한 상황에도 갈 곳이 없는 길거리 노숙인들은 여전히 서울역 광장에 있다. 이들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서 노숙이 길어지고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병원·복지 서비스와 연계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박 경위를 지난달 30일과 이달 4일 두차례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폭염·코로나 피할 안전한 공간 없어…쉼터 지원해야

체감온도 33도의 무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던 지난 4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는 남녀 노숙인들이 폐박스와 요가매트를 장판 삼아 모여있거나 홀로 누워있었다. 주변에는 먹다 만 소주병, 국물자국이 남은 컵라면 용기, 과일통조림 등이 굴러다녔다.

아스팔트 열기를 못 견디고 상의를 벗거나 '턱스크', '노마스크'를 한 이들도 보였다. 박 경위는 광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노숙인을 한명씩 찾아 밤사이 안부를 물으면서 "마스크를 제대로 쓰라"며 잔소리를 했다.

여름철에는 지하 공간에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했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폐쇄된 상태다. 또 일부 노숙인 지원 시설에서 이용 인원을 제한하면서 이들을 위한 공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전 10시~오후5시까지 노숙인들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역사 근처 그늘 뿐이다. 이들을 위해 서울역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앞에 그늘막을 설치했고, 지열을 낮추기 위해 살수작업도 한다. 하지만 폭염을 이겨내기엔 한계가 있다.

박 경위는 "지자체에서 시설이나 설비를 투자해서 노숙인들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낮기온 35도에 이르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노숙자들이22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 그늘진 곳에서 잠을 자고 있다. 2021.7.2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집에 돌려보내도 다시 뛰쳐나와…반복의 연속

박 경위가 일상에서 만나는 노숙인들의 삶은 '반복'이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어도 집 밖을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서울역 광장에 상주하는 200명 중 15~20%라고 한다.

박 경위는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하던 청년을 가족의 요청으로 여러차례 집에 돌려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 있는 시간은 잠시일뿐, 청년은 다시 서울역 광장에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 청년의 어머니는 박 경위를 통해 아들의 소식을 듣기로 했다.

이들이 다시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답답해서'다. 호화로운 집을 두고 노숙을 선택하는 이는 없다. 박 경위는 청년의 집을 직접 찾아긴 뒤에야 그 마음을 이해했다고 했다.

"혼자 살기도 힘든 원룸에서, 가족들이 일하러 간 시간동안 홀로 있는 게 감옥 같다는 거예요. 몸이 힘들어도 또래 노숙인 친구들과 넓은 광장에서 지내는 게 더 낫다는 거죠."

◇알코올 중독에 일자리 못 구해…9부능선 넘기 어렵다

그래서 노숙인들의 '자활'이 중요하다. 단순히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활을 위한 공공근로를 시작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박 경위가 노숙인 전담 경찰관을 맡은 지난 1년동안 자활에 성공한 사람은 3명에 그친다.  

'술'이 가장 큰 문제다. 서울역 노숙인 중 많게는 80% 이상이 알코올 중독 문제를 겪는다. 박 경위가 노숙인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술병을 두고 실랑이를 하는 이유다.

박 경위는 "기초수급자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나오는 돈으로 술을 마시는 분들이 많다"며 "근로자활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9부능선을 넘지 못하고 다시 노숙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술은 자활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부터의 보호도 막는다. 박 경위는 "코로나19 백신을 예약하고도 술을 참지 못해서 결국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택 서울특별시립 구세군 브릿지 종합지원센터 기획상담과 과장이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 고가 아래에서 노숙인에게 물과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2021.8.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의료지원 벽은 높고, 접근성은 낮아…찾아가는 서비스 늘려야

문제는 노숙인들이 알코올 중독 등 정신 질환을 치료받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사망 위험성, 타인 위해 가능성이 있을 때만 응급입원·행정입원이 가능하다. 그 외에는 본인 동의를 받아 입원절차를 밟아야 한다.  

박 경위는 "노숙인들은 자유를 뺏긴다고 생각해 입원치료를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외래진료나 약 처방은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효과가 없는 편"이라고 했다.

한국의료보건사회연구원도 '코로나19의 노숙인·쪽방주민에대한 영향 및 정책 방안 연구'에서 노숙인복지법상 의료지원이 응급상황에 한정된 점을 지적하며, "결핵이나 감염병, 정신질환은 별도로 의료적 지원 조항을 신설해 지원 내용을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노숙인 중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도 많지만 상담 자체를 모르거나 어떻게 받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박 경위는 "복지 제도는 잘 갖춰져 있지만 문턱이 높다"며 "현장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받으러 찾아온 사람들에게 열려있다"고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들을 상담하고 병원에 연계하는 것이다. 박 경위가 직접 설득해 병상을 제공해주기로 한 협업병원만 전국에 30여개다. 치료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유관기관과 지자체 등에 지원도 요청한다.

박 경위는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혼자서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벅찰 때가 많다"며 "추가 인력이나 예산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노숙인전담경찰관 박아론 경위© 뉴스1 박재하 기자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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