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컬렉션] 한국미술 명작① 이상범의 '무릉도원'과 백남순 '낙원'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중 이상범 작 '무릉도원' © 뉴스1>

 

이상범은 '무릉도원'을 1922년 벽정(碧庭)이라는 인물을 위해 제작했다. 이는 작가가 화면 상단에 직접 쓴 관지(款識)를 통해 드러난다.

병풍의 제1폭 뒷면에 적혀 있는 '청전무릉도원'(靑田武陵桃源)이라는 표제는 동양의 이상향을 대표하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그린 시의도(詩意圖)임을 알려준다. 또한 화면 상단에는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가 도연명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도원행'(桃源行)이 적혀 있다.

이상범은 안중식의 제자이다. 무릉도원은 이상범이 1920년대 초반 안중식의 산수화풍을 그대로 이은 수제자였음을 입증해준다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안중식은 조선시대의 전통을 계승해 1910년대에 '낙지론'(樂志論), '도화원기', '귀거래사'(歸去來辭), '추성부'(秋聲賦) 등의 문학작품을 산수형식으로 그린 시의도를 다수 제작했다.

'무릉도원'에는 안중식의 '도원문진'(桃源問津, 1913년작)이나 '도원행주'(桃源行舟, 1915년작)에서 차용한 도상도 있다. 배를 탄 어부가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서 동굴을 향하고 대각선 방향의 왼쪽으로 진인동(秦人洞)이 펼쳐지는 도상이 대표적이다.

표현기법도 스승 안중식의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풍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는 창덕궁 경훈각의 동쪽 벽에 걸린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 1920년작)와 동일하다.

'무릉도원'은 주제나 표현기법 등에서 스승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화면 왼쪽에 대각선으로 펼쳐진 진인동 장면에만 일점투시도법을 적용해 사실적인 공간감을 나타낸 것은 근대적 시점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처럼 전통 산수화에 근대적 시점을 일부 적용해 변화를 시도하는 창작 태도는 안중식의 '영광풍경'(1915)과 비견할 만하다.

한편 매일신보는 1923년 11월4일자에서 이상범의 또다른 '무릉도원'을 사진으로 수록했다. 기사에 의하면 사진 속 작품은 1년 전 아무개씨의 요청을 받고 반년 이상의 제작기간이 걸린 연작이며,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는 내용이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 구도는 물론 경물 배치까지 거의 유사하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중 백남순 작 '낙원'© 뉴스1

'낙원'은 서양의 '천국'(아르카디아) 전통과 동양의 무릉도원 혹은 무이구곡도의 전통을 결합한 것처럼, 동서양의 도상이 혼합된 독특한 느낌의 풍경화이다.

이 작품은 현실 세계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높은 산들이 화면 저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진 가운데, 바다와 강, 계곡이 화면 곳곳에 넘실댄다. 풍요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여러 형태의 집들이 조화롭게 배치됐으며, 인간은 각자의 소임에 충실한 듯 평화로이 노동에 열중하고 있다.

'낙원' 즉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동서양을 막론한 인간의 오랜 주제이다. 서양화를 공부한 1세대 한국 화가가 어떻게 소재나 기법면에서 동서양의 전통을 융합하고 변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또한 캔버스 천을 전통의 병풍 형식으로 장황을 한 것도 이색적이다.

백남순은 오산에 살던 시절에 전라남도 완도에 살고 있던 친구 민영순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작품을 선물로 보냈다.

이 작품은 1981년 민영순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미술평론가 이구열과 당시 뉴욕에 살고 있던 백남순의 협의를 거쳐 '낙원'이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해방 이전 제작된 백남순의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림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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