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화냥기' '용두질'이 뭐야"…지하철 '19금 詩'에 화들짝

"애들 볼까 부끄럽다" vs "작품인데 뭘"

광주도시철도공사 "전체 시화 점검하겠다"

 

 "근질근질한 화양기(화냥기)로! 은밀한 곳…."


19일 오후 5시쯤 광주 지하철 1호선 열차 안.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가 우렁찬 목소리로 열차 안에 부착된 시 한 편을 따라 읽었다.

고사리 같은 아이 손을 붙잡은 30대 후반 엄마의 얼굴은 점차 붉어졌다. 큰 목소리로 시를 읽어서가 아니다. 시의 내용이 무언가 이상했다.

"근질근질한 화양기(화냥기)로 연두색 치마 까지도(깔지도) 않고! 텅급하게(성급하게) 은밀한 곳 용두질하여 파악!"

엄마가 아이의 어깨쯤을 툭툭 치며 "그만, 조용히"라고 언질을 줬다. 무색해진 아이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듯했다.

학부모 이모씨(33·여)는 "얼마 전 딸이 한글을 뗐는데, 아는 단어나 글자만 나오면 따라 읽으려고 한다"며 평소처럼 병원이나 학원 광고를 읽는 줄 알았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낯뜨거운 시라서 깜짝 놀랐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아마 딸은 단어의 뜻을 전혀 모를 것이다. 모르는 게 차라리 다행인지 아니면 더 걱정해야 될 일인지 모르겠다"며 "나이 불문 남녀노소 타는 지하철에 왜 저런 내용의 시가 붙어있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의 내용을 보고 놀란 것은 학부모뿐이 아니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몇몇 노인들은 아이의 눈을 쫓아 시를 따라 읽고는 "낯짝 부끄럽다"며 혀를 끌끌 찼다.

문제의 시는 '영취산, 진달래'란 제목의 모 시인 작품.

이 시는 전남 여수 영취산에 핀 봄날의 진달래 풍경을 성적 행위에 빗대 표현했다.

예술적 은유로 '화냥기'와 '용두질'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뜻인 '남자를 밝히는 여자의 바람기', '남성이 여성과의 육체적 결합 없이 자기의 생식기를 주무르거나 다른 물건으로 자극하여 성적 쾌감을 얻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고려하면 공공장소에 어울리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 포털사이트에 '용두질'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결과가 있다며, 연령 확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날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본 김모씨(44)는 "선정적인 내용의 시가 공공장소에 붙어있어 상당히 불쾌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도시철도공사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저걸 게시하면서 그 어떤 사람도 문제가 될 줄 몰랐단 게 말이 되냐"며 "선정적인 시를 걸고 '예술'이라고 할 것이면 언젠가는 누드 사진을 걸고도 '예술'이라 할까 무섭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반대의 의견도 있다. 

지하철 이용객 박모씨(50)는 "평소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데 의미 없는 광고 대신 시와 그림을 게재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사람들이 너무 깐깐한 것 아니냐. 예술 작품을 작품 그대로 봐야지, 그 의미를 따져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명화들을 보면 여성의 누드 그림도 있고, 성적 행위를 하는 모습도 있지 않냐"며 "당시의 시민들이 화가들에게 잣대를 들이밀었다면 엄청난 작품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광주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공사 측은 여태껏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 못한 데다 게재된 시의 선정 기준이 모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점검을 약속했다.

공사 관계자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고 광고가 붙지 않은 게시판에 시화를 설치했다"며 "당시 전문 단체와 시인과의 협업 등으로 게재했지만 명확한 선정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현재 열차가 운행 중이니 빠른 시일 내로 열차를 점검해 이 시와 다른 시화들에 대해서도 확인 절차를 거치겠다"고 약속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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