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여전히 닿지 못할 '유토피아'

익산 장애인시설 '홍주원', 안전등급 'D'…연말까지 이전해야

이전 지역 주민 "강경 반대" vs 홍주원 "더 기다리기 어려워"

 

전북 익산시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이 주민반대에 부딪혀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가족도 없이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을 대변해 사회복지사들이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고있다.

4일 사회복지법인 창혜복지재단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홍주원은 20여년이 지나며면서 낡아버린 건물 탓에 이전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년째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홍주원이 도심으로의 이전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18년 1월이다. 현재 생활하고 있는 건물이 구조안전진단 결과 종합평가에서 D등급을 받아 철거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2017년 지진 이후 홍주원 건물 곳곳에는 균열이 생겼다. 콘크리트 벽체는 굵게 갈라져 있고, 이를 버티지 못하고 깨진 타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준이다. 물이 떨어지는 천장은 비닐로 겨우 막아놨다.

현재 34명의 중증장애인이 거주하고있는 홍주원 건물.(창혜복지재단 제공)2021.7.3 © 뉴스1


홍주원에는 의사소통이 어렵고,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 34명이 살고 있다. 임직원까지 합하면 7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함께 지내고 있다.

수십년 전 대한민국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을 의식해 '도시미관정비사업'을 실시했다.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부랑자와 노숙인, 장애인을 외딴 곳으로 옮기는 정책이었다.

홍주원에 살고있는 이들 역시 당시 익산시내에서 외곽으로 급하게 쫓겨난 이들이다. 대다수가 어린시절 가족에게 버림받아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42번 공약인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가 도입됐다. 정부는 정책기조에 맞춰 홍주원이 도심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조건으로 이전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재단은 서둘러 신용동의 한 고시텔 건물을 구입했다. 도심 속에 위치한데다 장애인 편의시설만 추가하면 개별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과 10여차례에 걸친 간담회도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은 환영은 커녕, 마을에 이주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어두거나, 공사를 방해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주민 반대에 가로막힌 홍주원은 또다른 4개 후보지에 신축하는 방안을 추진해보기도 했지만, 그 어디도 이들을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예산집행 마감기한인 올해 12월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홍주원은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인근 대학교에 재학중인 외국인 재학생 등을 상대로 원룸 임대업을 하고있는 주민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홍주원의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수입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진 주민들 역시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익산시 관계자는 "홍주원 시설 이전 과정에서 행정적 문제는 전혀 없는 상태"라며 "마을 주민들에게 반대를 멈춰달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1년째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창혜복지재단 관계자는 "함께 살기 위해 이전하는 건데 주민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면 오히려 차별의 따가운 시선을 더 느낄까봐 합의점을 찾기 위해 기다려왔다"며 "하지만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그저 혐오를 멈춰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년간 고립됐다가 이제야 다시 사회의 품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 장애인들. 이들이 살아가야하는 사회는 책 속에 나오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바로 내 옆집이라는 인식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홍주원에 거주하고 있는 한 시설 장애인이 직접 구입한 꽃을 마당에 심고있다.(창혜복지재단 제공)2021.7.3/© 뉴스1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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