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1주년] 41년 만에 드러난 1980년 5월 '그 날의 진실들'

5·18진상규명조사위 '민간인 학살'·'조준 사격' 등 밝혀

 

1980년 5월 광주. 지난 41년간 묻혀있던 그 날의 진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해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년 만에 '조준사격'과 '민간인 학살' 등 유의미한 증언을 확보해 공식화했다.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준사격해 학살한 뒤 그들을 암매장하는 사체처리반을 운영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수십년 간 논란이 됐던 당시 북한군 개입설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가짜뉴스라는 사실이 실제 검증 결과 확인됐다.

그간 조사가 피해 시민들과 유공자를 대상으로 한 하향식 조사였던 반면 5·18조사위는 신군부 책임자와 당시 계엄군 등을 대상으로 '상향식 조사'를 실시했다.

19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2만353명의 계엄군 중 약 200명의 장·사병들이 41년 만에 입을 열어 고백하면서 '발견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건물 옥상에 M60 저격수 배치…'시민 조준사격'

제3공수여단의 한 계엄군은 1980년 5월20일 오후 10시쯤 광주역에 M60 기관총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역 광장은 시민들의 시위가 빈번하게 벌어지던 곳이었다. 그는 시위를 저지할 목적으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눠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다고 진술했다.

계엄군은 이틀 뒤인 22일 광주교도소의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도 M60 기관총을 설치했다. 이들은 기관총 설치 뿐 아니라 M1 소총에도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을 무차별 살상했다.

제11공수여단의 한 계엄군 역시 같은 달 21일 오후 1시쯤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서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했다고 인정했다.

◇신혼부부·4살배기 저격 사살 등 '민간인 학살'

당시 계엄군은 '적'을 소탕할 목적으로 광주에 진입했다. 이들은 △광주교도소 일원 △광주-화순 간 도로 △송암동 일원 등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작전을 수행한 장병과 사병들은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해 최소 13차례 이상의 차량 피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복수의 계엄군은 광주교도소 옆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5월21일 광주봉쇄작전이 수행되는 동안에는 송암동 일원에서 제7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 제20사단, 전투교육사령부의 병력 등이 모두 관련된 봉쇄 작전이 있었다.

이때 계엄군 간의 오인사격과 민간인 학살 사건도 발생했는데 그 피해 실상은 계속 추가 조사 중이다.

특히 만 4세의 어린이가 총격에 의한 좌후경부맹관총상을 입고 사망한 후 암매장된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5·18조사위는 가해자를 특정하고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1980년 5월 항쟁의 최후 결전이 벌어진 직후의 옛 전남도청 모습이 최초로 공개됐다. 노먼 소프 기자가 촬영한 5월27일 모습. 계엄군들이 도청 내부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2021.5.6/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민간인 사체 수습에 참여했다" 사체처리반 운용


여전히 사체를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들이 '사체처리반(가칭)'에 의해 암매장 됐을 것이라는 의혹에도 가능성이 실렸다.

제3공수여단 출신 51명의 계엄군은 당시 암(가)매장을 지시, 실시, 목격했다는 증언을 했다. 또 제11공수여단 4개팀이 광주에 다시 내려와 시체 수습에 참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재까지 계엄군의 광주봉쇄작전 중 사망한 이들의 시신은 광주교도소 일원에서는 최소 41구, 주남마을 일원 최소 6구가 확인되지 않았다.

또 송암동 일원에서는 최소 8구의 시신에 대한 신원 파악이 진행 중이다.

5·18조사위는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모두 55로 보고 증언 등을 토대로 유력 암매장지를 추적한다.

◇북한군 침투설 직접 검증해봤더니…"가능성 희박"

줄곧 의혹으로 남아있던 '북한군 개입설' 역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가짜뉴스로 확인됐다.

5·18조사위는 자신을 광주에 침투했던 북한특수군이라고 밝혔던 A씨의 주장을 토대로 침투·복귀 경로와 사용 전술, 장비와 관련해 조사했다.

또 과거 북한 공작원 또는 무장공비 침투 사례와 당시 우리 군의 경계태세, 영광해안의 수심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육·해상이나 땅굴을 통한 침투와 복귀 경로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 냈다.

이 밖에 미국 정부 문서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북한군 침투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 미국 정부 기관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 날의 진실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체계적인 조사와 검증을 통해 41년 만의 새로운 사실들이 대거 밝혀졌음에도 불구 여전히 미완의 과제는 남아있다.

현재 밝혀진 진실은 빙산의 일각일 뿐. 여전히 땅 속 어딘가 묻힌 진실들의 깊이가 무한하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헬기사격의 책임자 등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전두환씨에 대한 재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5·18진상규명에 대한 미래는 밝다.

지난해 12월 5·18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최대 징역 5년에 처하는 5·18 역사왜곡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에 이어 공법단체 승격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법원에서도 당시 헬기사격을 인정하면서 그 날의 진실규명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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