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년 지나도 '유령취급'…"암호화폐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박상기의 난 후 3년간 제자리걸음…"정부, 방치하고 있다"

"법·제도 신설 전 현행법상 투자자보호방안 찾아야"

 

지난 2018년 국내 블록체인 업계를 크게 후퇴시킨 소위 '박상기의 난' 이후 3년이 지났다. 정부의 '불용'에도 암호화폐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지난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있는 화폐가 아니며 투자자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국회에서 발언할 정도로 우리 정부의 정책과 태도는 3년 전에 비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코스피를 추월할 정도로 실체있는 '시장'이 만들어졌지만 정부는 '아무 것도 없다'며 여전히 유령취급을 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도 혼선을 빚는 정부에 대해 일단 암호화폐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법·제도 만들어야한다지만…"암호화폐 인정·컨센서스 형성 우선돼야"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최근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논의가 시작된 법과 제도를 만들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지난 2018년 소위 박상기의 난 이후로 이번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까지 4년이 지나는 동안 암호화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변한 게 없다"며 "암호화폐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8년 박상기의 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가상화폐 규제 반대―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2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당시 국무조정실장을 맡고 있어 답변자로 나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상통화 거래 과정에서의 불법행위와 불투명성은 막고, 블록체인 기술은 적극 육성해 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며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가상통화 거래를 투명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박 센터장은 "정부가 약속했지만 3년 동안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며 "금융위원회는 (은 위원장 발언처럼) 절대로 암호화폐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를 이야기한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암호화폐연구센터장)는 "국내에서 암호화폐 관련 제도나 법을 정비하기에는 아직 국민의 컨센서스(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는 뜻을 밝혔다.

김 교수는 "그 이유는 그동안 암호화폐는 사기고, 암호화폐를 사는 것은 투기라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갑자기 정치권에서 암호화폐 제도화를 외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야당에서는 관련 태스크포스(TF, 전단조직)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치권에서 이같은 TF 등을 통해 여론을 바꿔나가는 일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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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투자자 보호, 일단 현행법으로도 가능…공정위·방통위 등도 나서야"

암호화폐 법과 제도를 신설하기 전이라도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부처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는 "당장 조단위 돈이 오고가는 현실을 정부가 4년째 방치하고 있다"며 "금융위원장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문답을 주고받을 정도로 많은 문제가 이미 발생하고 있고, 이미 존재하는 법과 정부부처들을 통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능한 것들이 많은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구 변호사는 "금융위가 현재처럼 암호화폐를 금융투자상품으로 보지 않고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암호화폐를 일반상품으로 보고 보호를 할 수 있는 방안은 많다"며 "정치권에서도 금융위원장한테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방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과기정통부 장관을 상대로도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암호화폐 거래는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 약관규제법,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 공정거래법 등 공정거래위원회 소관법만 4가지가 있고, 또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전기통신사업법이 적용되니 방송통신위원회도 관할할 수 있다"며 "의지만 있다면 횡령이나 펌핑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형법상 사기로도 처벌하는 등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현행법으로도 우선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 국회(임시회) 제1차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4.2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암호화폐 법·제도, 산업 진흥을 통해 제대로 된 생태계 만들어야"

또 전문가들은 정부에서 암호화폐 생태계의 인정과 함께 규제보다는 산업 활성화 쪽을 통해 암호화폐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김형중 교수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암호화폐 공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투자자 보호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온갖 쓰레기같은 암호화폐들도 상장되고 있는데, 국내에서 좋은 암호화폐들이 만들어져서 여기에 사람들의 투자가 몰리도록 하는 것이 투자자 보호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도 "정부가 암호화폐를 인정한 뒤에는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활성화시키는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이후 역기능을 방지하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 관리, 공시정보의 합리성 확보 책임 부과, 상장기준 합리화 등 기존 금융계에서 건전한 금융 생태계 육성을 위해 추진하는 상식적인 방안을 추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암호화폐의 위상이 달라진 현재, 선진국 중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고 기술혁신을 우대하는 나라 중 암호화폐를 금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G20를 기준으로 봐도 터키와 인도가 유일하다.

구 변호사는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나름의 포용적인 법제도 하에서 기존의 법을 적용하고나 프랑스처럼 아예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진흥하고 있다"며 "암호화폐 생태계를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유령 취급하고 외면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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