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날]플라스틱 만큼 튼튼한 '종이 튜브', 어떻게?…2년의 기록

<1970년 4월22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지구의 날'이 어느덧 51주년을 맞았다. 전세계 150여개 국가가 참여하는 지구촌 최대 친환경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정부와 시민단체는 물론 'ESG 경영'이 최대 화두가 된 기업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구의 날을 맞아 기업들이 지구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지구의날]아모레퍼시픽 개발자 정해원·박송은 연구원 인터뷰

2년 연구 끝에 '데코 심' 기술 적용…"혁신은 작은 시도부터"

 

"종이로 만든 용기에 화장품을 보관할 수 있을까?"


빵이나 감자튀김을 담은 종이봉투에 기름이 스미는 자국을 떠올려보면 다소 황당한 질문이다. 화장품 용기는 제품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내용물을 쉽게 빼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화장품 용기 소재로 종이가 사용되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종이 튜브가 최근 세상에 나왔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무려 70%나 줄였고 내용물도 최장 3년까지 보관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구의 날을 맞아 아모레퍼시픽 개발자 2인을 만나 지난 2년간의 기록들을 들어봤다. 

◇"물에 젖는 종이로 어떻게"…고정관념 깨트린 '종이튜브'

"모순과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에서 혁신이 탄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해원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미래기술랩 수석연구원은 종이튜브 개발에 담은 철학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정 연구원이 속한 미래기술랩은 2~3년 뒤를 내다보고 향후 출시할 제품을 선행 연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최근 화두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패키지 개발이다.

그는 "물에 쉽게 젖는 종이를 사용해 화장품 보관 용기를 만든다는 점과 외부 환경으로부터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용기는 자연에서 생분해되는 소재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모순이었다"며 "이런 모순 관계를 조화롭게 풀어나가며 접점을 찾는 과정이 제품 개발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24년째 아모레퍼시픽에 몸담은 베테랑 개발자다. 2001년 마스카라 브러시를 각진 삼각형으로 만들어 국내 마스카라 시장을 석권한 '라네즈 클린 앤 컬업 마스카라'와 2005년 출시한 전동 마스카라 '헤라 마스카라 오토매직'이 그의 대표 작품이다. 마스카라 몸통을 실리콘으로 만들어 내용물을 남김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든 '헤라 리치 스퀴즈 마스카라'는 2019년 '월드스타 패키징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정 연구원과 아모레퍼시픽이 종이튜브 연구를 시작한 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친환경 패키지 개발은 아모레퍼시픽 전 임직원의 지향점이었다"며 "2년 전부터 파우치나 튜브 형태를 포함한 종이패키지 개발을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번 종이튜브가 탄생할 수 있었던 핵심 기술은 '데코 심'에 있다. 일반 플라스틱 튜브는 기계에서 소재를 압출해낸 뒤 한쪽 면을 집으면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치약 튜브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이 개발한 종이튜브는 종이원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튜브 형태로 둥글게 원단을 감싸 이어붙이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튜브 이음새가 거의 없이 밀봉하는 기술이 데코 심의 핵심이다. 이 난제는 협력사 '부국T&C'가 최근 국내에 데코 심 설비를 들여오면서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종이튜브 원단은 아모레퍼시픽이 직접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종이에 '차단성 필름'을 합지해 내부와 외부의 유·수분 유출을 차단하는 '나노박막차단' 기술을 적용했다. 정 연구원은 식품회사에서 제품의 산패를 막기 위해 포장에 주로 사용하는 '나노증착필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 연구원은 "여러 필름을 실험해보니 나노증착필름 효과가 가장 우수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원단'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고, 부국T&C는 데코 심 기술을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설비를 들여와 협력했다"며 "종이와 필름을 합지하는 (종이튜브 생산) 기술 중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보다 기밀성이 좋은 합지 구성을 개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오후 경기 용인시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서 친환경 종이 튜브 포장재 개발 연구원 정해원(왼쪽)박송은씨가 종이튜브를 살펴보고 있다. 2021.4.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100% 종이 분리배출은 어려워…고객 위한 3년 장기 보관 기능은 '혁신' 평가

종이튜브 개발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박송은 SCM유닛 포장재연구팀 차장은 종이튜브 개발을 위해 정 연구원과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지난 2011년 입사한 그는 현재 미래기술랩에서 연구한 기술을 실제 제품에 적용 가능한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앞서 정 연구원이 시제품을 연구·개발하면 이후 상용화 여부는 박 차장과 팀원들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박 차장은 "종이튜브의 치명적인 결함은 '터짐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플라스틱만 사용해 만든 튜브와 종이 튜브를 비교해보니 종이튜브가 터짐강도를 견디는 수준이 낮았다"며 "터짐강도를 플라스틱과 유사하게 끌어 올리기 위해 필름층 두께를 조절하고 재질을 새롭게 검토하는 작업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번 종이튜브는 일반 종이 쓰레기처럼 분리배출을 할 수는 없다. 종이튜브에 사용한 원단의 약 30%는 기밀성(氣密性)을 높이기 위해 필름 코팅층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외부에도 수분을 차단할 수 있는 코팅을 입혔다. 내용물 보호라는 기능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한 종이로 대체는 한계가 있다.

튜브 뚜껑과 제품 입구에도 플라스틱이 사용된다. 정해원 연구원은 "캡과 헤더 스크류 부분은 종이로 성형이 불가능해 아직 풀지 못한 숙제"라며 "플라스틱 사용량을 기존 대비 70% 줄였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번 개발 성과에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외선 차단제 재형을 담을 수 있는 기술력과 최장 3년이라는 보관 기간 때문이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은 종이튜브 첫 번째 제품으로 '프리메라 스킨 릴리프 UV프로텍'를 출시한다.

박송은 차장은 "자외선 차단 기능성 원료는 포장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반응성이 높은 내용물 중 하나"라며 "그런데도 이번 종이튜브에 보관 시 안정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은 종이튜브를 대부분 제품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3년이라는 장기 보관 기간 역시 소비자를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정해원 연구원은 "쉽게 2년 정도만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면 안 되겠냐는 이야기도 있었다"며 "그러나 화장품은 한 번 구매하면 1년이라는 시간이 쉽게 흐른다. 보관 기간이 길수록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3년간 보관할 수 있도록 품질력을 높였다"고 말했다.

정해원(왼쪽)·박송은씨. 2021.4.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생분해 패키지 개발 목표"…플라스틱 '줄이기'부터 한 발씩

두 종이튜브 개발자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박송은 차장의 시선은 세제나 화장품을 재사용 용기에 받아 갈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을 위한 패키지로 향하고 있다. 

그는 "용기를 재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내용물을 구독할 정도로 눈길을 사로잡는 패키지를 개발하고 싶다"며 "내용물을 리필해서 사용할수록 제품에 대한 고객 로열티가 커진다. 그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패키지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해원 연구원은 "완전히 생분해가 가능한 패키지 만들고 싶다"며 "이번 종이튜브를 시작으로 아모레퍼시픽뿐만 아니라 다른 화장품 업계에도 종이 패키지 사용이 늘기를 바라고 있다"고 웃었다.

"플라스틱을 완전히 대체하면 더욱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줄인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플라스틱을 100% 대체하는 제품을 만들 때까지 기다린다면 친환경이라는 가치는 발전하기 어려워요. 지구와 환경을 위해 한 발씩 나아가는 과정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아모레퍼시픽의 종이튜브를 마주할 소비자를 향한 두 연구원의 바람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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