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기대치 훌쩍 뛰어넘은 '웰메이드 사극 스릴러'

영화 '왕의 남자'(2005, 감독 이준익) 이후 비슷한 류의 '팩션 사극'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성공한 케이스 보다는 기대에 못 미치는 이야기와 연출로 아쉬움을 남긴 작품들이 더 많다. 호평 속에 흥행한 작품은 '최종병기 활'(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관상'(2013)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명량'(2014)과 '사도'(2015)와 '남한산성'(2017)도 흥행 사극이지만, '팩션 사극'보다는 정통 사극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올빼미'는 얼핏 고만고만한 팩션 사극 영화로 보이기 쉬운 작품이다. 하지만 10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확인한 영화는 서스펜스 넘치는 탄탄한 연출과 이를 뒷받침하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덕에 몰입해 볼 수밖에 없는 웰메이드 팩션 사극이었다. 앞서 언급한 성공작들의 계보를 이어갈만한 가능성이 엿보였고, 특히 왕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광해, 왕이 된 남자'나 '관상' 등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주인공은 어의를 꿈꾸며 내의원에 들어가게 된 실력 좋은 침술사 경수(류준열 분)다. 대외적으로 그는 '맹인'이지만, 사실 그가 앓고 있는 병은 '주맹증'이다. 주맹증은 빛이 있는 낯에는 시력이 없지만 불이 꺼진 밤에는 눈앞의 사물을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심장병을 앓는 동생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궁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그는 자신의 주맹증을 감춘 채 맹인 침술사로서 어의 이형익(최무성 분)의 신임을 얻게 된다. 이형익은 경수를 늘 데리고 다니며 그에게 청에서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김성철 분)의 치료를 맡긴다. 

궁궐 내부의 상황은 복잡하다. 무려 8년 만에 청에서 세자와 세자빈 강빈(조윤서 분)이 돌아왔지만 왕 인조(유해진 분)의 심기는 편치 않다. 세자 부부와 함께 온 청 사신의 횡포가 그에게 다시 한 번 심한 굴욕감을 줬을 뿐 아니라 영의정 최대감(조성하 분)를 필두로 한 신하들, 그리고 세자마저 청나라의 손을 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며 그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느 새벽, 소현세자에게 침을 놓던 경수는 그만 실수로 주맹증인 사실을 들키게 된다. 그간 밤중에 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을 보아도 모른 척 해온 그지만, 결국 호통치는 소현세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소현세자는 의외로 경수를 이해해주며 오히려 글공부를 하고자 하는 그를 격려해준다. 

'올빼미'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 설정은 역시 주맹증이다. 낮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밤에만 눈이 보이는 주인공의 핸디캡은 드라마틱한 상황들을 만들며 스릴러를 위한 장치로 손색없이 쓰였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지만, 급하지는 않다.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중반부까지는 후반부 터질 여러 사건들을 위해 차근차근 설정을 깔고 규칙들을 소개하며 관객의 몰입을 서서히 유도한다. 팩션으로서의 '그럴듯함'도 부족하지 않다. 역사적 사건과 사건 사이 상상의 영역을 신선하게 재창조했다. 

'왕의 남자'의 조감독 출신인 안태진 감독은 "현대적인 스릴러"라고 연출 주안점을 강조한 바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이 왜 현대성을 강조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미술은 고증을 중요시 한 기존 사극들의 수준을 지키지만,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스타일과 미장센을 취한다.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되며 정면보다는 측면에서 인물들을 비춰 그들의 인간적이고 연약한 면모를 드러낸다. 사극의 웅장함과 비장미는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스릴러물이 보여줄 수 있는 쫄깃한 심리전의 묘미가 가득하다. 

배우들은 예상대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처음으로 왕을 연기한 유해진은 여러 배우들이 연기했던 인조 캐릭터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위엄있는 왕의 모습을 하다가도 저급하고 비열한 약점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면모가 놀라움을 준다. 경수 역의 류준열 역시 '믿고 보는 배우'로서의 제몫을 해낸다. 눈이 보일 때와 보이지 않을 때 뿐 아니라 여러 감정이 오가는 중에 보여주는 다양한 눈빛 연기가 특별하다. 러닝타임 118분.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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