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살린 항공 재난, 인간들의 선택은…'비상선언' [시네마 프리뷰]

'비상선언'은 항공기가 재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장의 판단에 의해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하는 항공 용어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오프닝을 연 이 영화는 초반부 연기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리얼하고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이 돋보이지만, 후반부에는 재난물의 클리셰를 따라가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지난 25일 오후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관상' '더 킹'의 한재림 감독의 신작으로,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의 화려한 라인업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다. 당초 영화는 지난해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1년여 만에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영화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인천공항에서의 모습과 동시에 아내와 휴가를 취소하고 경찰서에 출근한 형사 인호(송강호 분)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묘한 표정의 진석(임시완 분)은 대뜸 항공사 카운터를 찾아가 승객이 가장 많은 비행기가 무엇인지 묻고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불쾌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러다 재혁(이병헌 분)의 딸(김보민 분)이 우연히 진석의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고, 이를 본 진석은 재혁과 신경전을 벌이다 재혁의 편명을 알아내 행선지를 결정한다. 인호는 우연히 비행기 테러를 예고하는 동영상이 올라왔다는 신고를 듣고 아내가 탄 비행기만은 아니길 바라며 수사에 나서는데, 이내 범인의 집에서 테러를 준비한 정황을 발견한다. 그 사이 진석은 비행기에 성공적으로 탑승해 테러를 감행한다.

'비상선언'은 영화 초반부터 테러범이 누구인지 밝힌다. 이는 영화에서 테러범을 추리하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상과 상공에서 여러 사람이 테러범을 잡기 위해 나서고, 더 큰 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은 각자의 이기심을 발현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영화는 상공에 떠있는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공포감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실제 크기의 항공기 세트를 360도로 회전시키고, 여기에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해 비행기를 탄 승객들을 보는 관객들에게도 공포감과 몰입도를 안긴다. 부기장 역할을 맡은 김남길은 실제 비행 훈련을 받아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또한 채도를 낮춘 뿌연 화면 역시 마치 '비상선언'의 재난 상황이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다가오게 만든다.

특히 영화 속 재난 상황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지난 2년, 팬데믹 기간 목도한 일부의 이기적인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들며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영화는 희망적인 선택을 보여주고자 하고, 우리가 왜 인간인지 다시금 되묻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재난 상황이 거듭되면서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고 방황한다. 이 같은 흐름은 인물들의 감정 변화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못해 영화 속 희생정신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재난을 마주한 극 중 인물들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존재로서 그 몫을 해낸다. 형사인 인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단 한 가지 실마리라도 찾아 나서는 등 지상에서 고군분투하고, 재혁은 재난 속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한다. 부기장 현수(김남길 분)와 사무장 희진(김소진 분) 역시 끝까지 책임감 있게 승객들을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테러리스트로 분한 임시완은 사이코틱한 분위기를 완벽히 표현했다. 당위성이 없는 빌런이라 진석이 테러를 벌인 이유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지만, 임시완은 눈빛만으로 극에 몰입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다만 전도연이 분한 국토부 장관 숙희가 전면으로 나서지 못하고 밋밋한 인물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러닝 타임 140분. 오는 8월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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