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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그들은 함께 울었다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그들은 함께 울었다

 

오래 전 어느 지인의 딸 S양이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가 있을 때 였습니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교회였는데, 어느 해 추수감사절에 그 교회에 출석하는 여러 나라 학생들이 각자 자기나라 고유의 전통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쇼를 하는 재미있는 프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남다른 미모를 지닌 S양도 아름다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무대에 서서 한복의 전통미를 한껏 과시하였습니다.

관중석에는 그 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S양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유심히 지켜보는 70대 백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S양은 할머니의 눈길을 의식했지만, 아마 그녀가 입은 한복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의상쇼가 끝난 후에도 그 할머니는 또 S양에게로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그것이 한국 여성들의 전통의상입니까?”“예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너무나 아름답군요.”“감사합니다.”

그렇게 대화는 끝났지만 할머니는 계속 S양의 곁을 떠나지 않고 유심히 S양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S양이 그 이유가 궁금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저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그러자 할머니는, “그러문요. 한국이라는 나라야 내가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나라지요.” 그 말에 호기심이 더해진 S양이 또 물었습니다. “뭐 그럴 만한 사연이라도 있으신가요?”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친교실 한 켠으로 S양을 안내해 놓고는 그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실은, 한국 전쟁 당시 제 아들이 한국전에 참전하였습니다. 전투가 연일 계속되는 중에도 가끔 보내온 편지에서 안도감을 가지면서 그의 무운을 빌었습니다. 편지마다 그 내용의 일부는 언제나 한국의 아름다운 계절, 특히 한국의 파아란 가을 하늘이 얼마나 상쾌한지 모른다고… 들녘에는 상큼한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산 기슭에는 예쁜 단풍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천혜의 나라라고 감탄했습니다. 그처럼 축복받은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야 할 그 땅에서 왜 그토록 살벌한 살육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서 속히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날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하루하루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여기까지 말을 이은 할머니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소리로 한 마디를 토했습니다. “…그해 겨울에 나는 아들의 전사통지를 받았습니다…. 내 아들이 흘린 피가 젖어 있는 그 한국 땅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S양은 할머니에게 무슨 말로 응대를 하고 위로를 해야 할지를 몰라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와락 할머니를 껴안았습니다. “할머니!” 그 한마디 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 눈물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포옹은 한국인과 미국인의 포옹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가족 간의 포옹이었고, 그들의 눈물은 황인종과 백인종의 눈물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엄마와 오빠를 잃은 누이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그것이 할머니의 슬픔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6ㆍ25전쟁으로 인하여 우리 땅에서 죽어간 수십만명의 젊은이들, 한국군, 미국군, 인민군, 중공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 속에는 평생을 눈물과 탄식 속에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들이 겪는 아픔은 참으로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최악의 산물이요, 그 어떠한 대가를 치루고라도 제지 시켜야 할 죄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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