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도 '기생충'에 빠진걸까. 오스카 시상식을 불과 열흘 남짓 남긴 지금 외신에서도 '패러사이트'('기생충'의 영제, Parasite)와 디렉터 봉(Director Bong)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샤를리즈 테론은 '기생충'의 주인공 박소담의 팬을 자처한다. 영화를 보고 난 감독 및 배우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기생충'에 대해 극찬하고 많은 이들이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을 확신하고 있는 분위기다.
◇시상식 휩쓸다…남은 건 아카데미
'기생충'의 첫 기록은 지난해 5월 열린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다.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세계적 화두인 빈부격차를 소재로 해 우리와 문화가 다른 서구권 관객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해에 이러난 '사건'이라 더욱 의미있게 받아들여졌고, 한국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이 영화는 호주의 제66회 시드니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지난해 연말부터 제91회 전미비평가위원회 외국어영화상, 뉴욕비평가협회상 외국어영화상, LA영화비평가협회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을 받았다. 올 들어서는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제26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앙상블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시상식 수상 행렬의 절정에 미국 최고의 시상식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이름을 올린 부문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편집상, 국제극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까지 6개 부문이며 국제극영화상과 각본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점쳐지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를 중심으로 '기생충'의 스태프 및 배우들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할리우드 여러 영화인들과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기생충'의 수상이 시상식 투표권을 갖고 있는 8469명 회원들의 투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러 행사들이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과 할리우드 거장의 만남이 이뤄지고 이는 외신 기사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오찬의 최고 스타였다고 밝히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봉 감독과 5~6번의 식사를 했다고 자랑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써 눈길을 끌었다. 그뿐 아니라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가 송강호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사진은 지난달 초에 큰 화제가 됐고, 샤를리즈 테론이 직접 박소담이 올린 게시물에 찾아와 댓글을 남기며 팬을 자처한 것 역시 놀라움을 줬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1월초 진행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가장 좋아하는 오스카 경쟁작으로 '기생충'을 꼽았고, 마틴 스콜세지 '아이리시맨'의 주연이자 전설적인 배우 알 파치노는 '기생충'에 대해 "나를 흔들어놓은 영화"라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은 자신의 SNS에 "평생을 해온 질문에 답을 주는 영화"라고 감탄했고, 명품 연기로 유명한 배우 토니 콜레트 역시 "내 마음을 흔들었다"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봉준호 감독의 팬덤을 '봉 하이브'라고 부른다. 북미 관객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봉 하이브'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동하며 '기생충' 뿐 아니라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생충'에 열광하는 이들은 이처럼 영화 전문가들 뿐만이 아니다. 국적 관계없이 영화에 대해 애정을 표하는 일반 관객들은 온라인상 여러 종류의 '밈'(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퍼져나가 유행을 하는 콘텐츠)을 생산해내고 즐긴다.
대표적인 밈이 '제시카 송'이다. 극중 기정(박소담 분)이 오빠 기우(최우식 분)와 함께 신분을 속이고 박사장의 집앞에서 부른 '제시카 송'은 짧은 영상으로 편집돼 SNS를 타고 유행했고, 이 같은 인기에 북미 배급사 네온은 박소담이 직접 다시 부른 '제시카송' 영상을 공식 SNS에 올리는 팬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더불어 유튜브에는 '기생충'의 내용을 해석하는 여러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상영관 확장…상영관 수 '껑충'
지난해 10월11일 미국 3개 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기생충'은 개봉 111일째를 맞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무려 1060개관에서 상영 중이다. 북미 흥행 수익은 3156만7648달러(약 376억 4442만원)이며, 북미를 포함한 전세계 흥행 수익은 1억6145만 7670달러(약 1925억3827만원)를 기록했다.
상영관 확장은 '오스카 레이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월13일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후보가 발표되고 난 주 주말인 1월17일부터 급격하게 극장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16일까지 345개관에서 상영됐던 '기생충'은 다음날인 17일부터 843개관에서 상영됐고, 24일부터 1060개관으로 늘어났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는 미국에 체류, 각종 시상식 및 행사들에 참여해 영화를 홍보하고 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4대 조합상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면서 이 영화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를 발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