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종영한 KBS '동백꽃 필 무렵'의 이야기 한 축을 담당한 것은 향미(손담비 분)였다. 입만 열면 코펜하겐을 가야 한다고 하고, 악착같이 1억원을 모으는 모습 등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극의 후반부, 향미가 코펜하겐에 간 동생 혜훈을 위해서 돈을 부쳐왔으며 수 년의 희생과 헌신에도 동생에게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 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짠내'나는 반전이 드러났다.
향미에게 모진 말을 내뱉던 동생 혜훈 역은 바로 배우 장해송(30)이었다. 이름과 얼굴은 초면인데, 출연작들을 들어보니 '아! 그 역할' 소리가 나온다. tvN '응답하라1988'에서 최택(박보검 분)과 마지막 대국을 하는 중국 바둑기사, tvN '미스터션샤인'에서 쿠도히나(김민정 분)의 호텔의 벨보이, MBC '압구정 백야'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해왔다.
남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들어선 배우의 길, 매번 오디션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놓지 않았다. 서른이 되는 올해, 그는 '동백꽃 필 무렵'같은 좋은 작품을 만나 기억에 남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서 웃었다. 비록 욕은 많이 먹었지만 행복했다며, 이 좋은 기운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너무 좋았다.(웃음) 향미를 괴롭혀서 좋은 게 아니라 내 캐릭터가 향미의 서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많은 분들이 (향미를) 공감해주었기 때문이다. 댓글에 욕이 많이 달렸지만 그건 괜찮았다. 내 캐릭터를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어떤 댓글이 기억에 남나. 주변의 반응은.
▶꼭 집안에 저렇게 모기처럼 빨아먹는 가족이 있다는 반응이 있었다. 또 혜훈의 아역 시절에는 선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저 모양이 됐냐고 하시더라. 최근에 친구 결혼식 사회를 봤는데 하객 분이 알아 보시고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신기했다. 드라마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주변 분들도 전화해서 욕 많이 했다.(웃음)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많이 하시더라. '향미에게 그렇게 해야만 하냐'면서.
-내가 봐도 너무 못 됐다고 생각한 장면이나 대사는.
▶딱 혜훈이라는 인물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용식이 전화했을 때다. '한국 경찰들은 원래 이렇게 무례하냐'는 대사인데, 자기 누나가 생사가 확인이 안 됐다는 전화에 대고 형사에게 무례하다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어딨나. 참 못 됐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을 굉장히 만나고 싶었다. 외롭다기보다 나 역시 애청자로서 선배들, 옹벤저스 배우분들도 만나고 싶었다. 옹산에서 같이 호흡해보고 싶었다.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역시 누나로 나온 손담비씨다. 마주 보면서 연기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통화하는 연기는 감독님이 대사를 쳐주시고 혼자 해야 했다. 향미 통화 장면과 톤이 다르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는데 다행히감독님이 디렉팅을 잘 해주셔서 일관성있는 장면으로 나왔다.
-시청자로서 '동백꽃 필 무렵'을 어떻게 봤나.
▶기본적으로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뚜렷하고 탄탄하더라. 누구의 이야기가 나오든 흐트러지는 것 없이 매회 탄탄하게 이어진 것 같다. 대사 하나하나 다 너무 좋았다.
▶나 역시 좋은 기운이 다음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동백꽃'의 높은 인기와 함께 여러 작품 관계자분들이 나라는 사람을 인식하는 계기는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장해송, 스스로를 소개해준다면.
▶고등학교 때 연극반을 하면서 연기의 꿈을 품었는데 형이 야구선수였고 부모님은 예체능계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연기를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고3때 삭발을 하면서 공부를 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군대를 다녀 와서 내 꿈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진짜 연기를 할지, 다른 일을 해야 할지 스스로 물었다. 그때 영화 '가타카'를 보고는 다시 배우가 돼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시 부모님을 설득했고 지금은 응원을 받으면서 연기에 임하고 있다. 내가 조금씩 비중도 늘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더 많이 힘을 주시는 것 같다.
-단역 출연이 많다.
▶내가 처음에는 잘 모르는데 꽤 히트한 드라마에 나와서 역할을 설명해주면 다들 '아!' 하고 알아본다. '응답하라1988'에서는 택(박보검 분)에게 지는 젊은 중국 바둑기사로 나왔다. '미스터션샤인'에서는 호텔의 벨보이였다. 그때 김민정, 변요한 선배에게 고마운 일이 많다. 변요한 선배가 홍삼스틱을 주면서 '이거 먹고 힘내자'고 '잘 될거다'라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 홍삼스틱 아직도 가지고 있다. (웃음)
-사실 여러 작품에 나오긴 했지만 주로 단역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조급함도 있었을 것 같은데.
▶조급한 마음이 컸다. 큰 역할을 아니지만 불러주시고 꾸준히 오디션도 보고 역할을 맡는 게 기쁘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 더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가 뭐가 부족한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힘들었던 그때가 있었기 떄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입도 크지 않았을텐데.
▶너무 힘들었다.(웃음) 아르바이트도 굉장히 많이 했다.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그곳에서 드라마 촬영을 한 적도 있다. 그걸 지켜볼 때 힘들었다. 같이 모델 일을 하고 배우 꿈을 키운 동료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조바심도 느꼈다.
-힘들었던 시간이 큰 자산이 된 것 같다.
▶훗날 내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할 이야기가 많다. 꼭 출연해보고 싶다.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에 나갔을 때 나의 '웃픈' 에피소드들을 풀어보고 싶다. 예능용 에피소드를 꽤 많이 쟁여두고 싶다.
-예를 들면.
▶'압구정 백야'라는 드라마를 촬영할 때 나는 매니저도 없고 혼자 큰 가방에 옷 챙겨다닐 때다. 카메라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막 모여들고 외국인들도 구경을 하더라.촬영 다 끝나고 스태프들도 빠지고 나 혼자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사람들이 계속 나를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는 거다. 누군지를 모르니까 '연예인이겠지' 싶은 눈으로. 그때 어떻게 할 지 몰라 건물 사이로 들어갔는데 다들 내가 들어간 골목까지 와서 구경하시더라. (웃음) 택시를 타고 근처 지하철역까지 가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내가 스스로 조금씩 천천히 계단을 밟아 언덕을 올라가는 것 같다. 이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이 성취감 하나로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너무 좋다. 또 그만큼 연기가 너무 좋고 매력이 있다.
-자신만의 성공의 기준이 있다면.
▶내 스스로 떳떳하게 배우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다. 어떤 원대한 꿈을 이뤄야 성공인 걸까 생각해봤는데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게 성공인 것 같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연기자 중에 장해송이라는 사람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해온 배우이고 앞으로도 잘 할테니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