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에게 2019년은 남다른 시간으로 기억된다. 배우의 길을 따라 작은 단역을 맡으며 기다리던 '때'를 만났기 때문. JTBC '스카이캐슬'에서 부모의 비뚤어진 욕망과 사랑으로 키워진 소녀 예서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에 이어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로 풋풋하고 귀여운 학원물 로맨스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기분 좋은 한 해를 보냈다.
너무나 강한 임팩트의 예서를 지우고 김혜윤이 이런 연기도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선택했다는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은단오 역할은, 김혜윤에게 나도 모르는 애교를 발견하는 남다른 경험을 선물했다. 더불어 주인공이 활약하는 스테이지(극의 주요서사가 그려지는 페이지) 밖의 공간에서 자아를 표출하고자 하는 의지의 엑스트라라는 설정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초심의 중요성을 깨닫게 만들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마친 김혜윤을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연기에 대한 진중한 자세와 함께, 이번 드라마를 통해 어쩌다 발견한 애교를 꽉 채워 담은 답변을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잘 마무리한 소감은.
▶이번에는 분량도 많고 첫 주연을 맡은 것이어서 부담감도 컸는데 그만큼 더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여름이 되면 생각이 날 것 같은 작품이다.
-드라마 안에서 학원물, 로맨스, 사극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작품은 만화책 설정이다. 단순한 만화 내용이 아니라 그 만화의 설정값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엑스트라이다보니 스테이지와 쉐도우(스테이지 밖의 공간) 구분하기가 초반에는 너무 어려웠다. 뒤에는 대학생 분량도 나오는데 단오라는 인물 그대로 가야 하는 건지, 성격이 바뀌어야 하는지 고민도 됐다. 여러가지 장르와 설정을 소화하는 게 어려웠고, 많이 연구할 시간이 없어서 걱정도 됐다.
-전작 '스카이캐슬' 예서가 너무 강해서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데 고민이 컸을 것 같다.
▶학원물을 연이어 한다는 것에 걱정이 컸다. 처음에 ('어하루') 감독님은 머리를 자르지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내가 강력하게 자르고 싶다고 했다. 또 교복을 입고 등장하면 연기하는 내가 예서가 떠오를 것 같더라. 그 외에는 크게 고민이없었다. 왜냐면 예서와 단오는 너무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예서 역할을 하고난 후 인터뷰에서 '또 학생 역할이 들어와도 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난 또 한다고 했다. 같은 학생이어도 성격, 환경, 설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드라마에서 보여준 변신에 만족하나.
▶아쉬움도 있다. 예서처럼 보이는 장면도 있는데 그건 내 연구가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일단 나는 단오를 만나고 나서 애교가 굉장히 많이 늘었다. 평소에 동작이 크거나 애교가 있는 편이 아니었는데 나도 놀랐다. 6개월 만에 만난 부모님이 '왜 이렇게 애교가 늘었냐'면서 부담스러워 하시더라.
▶예서도 100% 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단오도 그렇다. 단오가 화를 낼 때는 예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그것도 김혜윤이니까.(웃음) 짜증은 나 스스로 제일 편한 상태에서 내야 하는 거니까 그건 내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단오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예서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단오가 될 때는 전작이 안 보이게 하고 싶었다. 나도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서 이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첫 로맨스 연기 어땠나.
▶쉽지 않더라. 자꾸 전작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전작이 하나 밖에 없으니 이해해달라.(웃음) 전작은 짝사랑이었지만 로맨스에 초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로맨스도 있고 만화책, 심장병이라는 설정, 하루라는 남자 때문에울고 웃고 쌓이는 감정들 복합적이어서 되게 어렵더라. 사랑에만 포커스를 두기는 어려웠다.
-만화가 베이스이다보니 오글거리고 과장된 연기도 해야 했다. 어렵진 않았나.
▶최대한 듣기에 거북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게 제일 컸다. 설정 자체가 오글거리는 걸 넣은 작품이다보니까 어떻게 하면 거북하지 않고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게 할까를 고민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오글거리고 코믹하게 해버리자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스테이지 장면은 다 힘들었다. 섀도 장면은 내가 편한 상태로 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에서의 단오는 나와 성격이 안 맞는다.(웃음) 가만히 있고 조신해야 하는데 힘들더라.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다.
▶원작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나도 원작 웹툰을 보는데 감독님이 다른 이야기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안 보는 게 낫다고 했다. 나도 시나리오와 원작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중반부터는 웹툰을 안 봤다. 원작을 사랑한 팬들은 드라마의 전개에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소재만 가져온 다른 면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시청자도 백경파와 하루파로 나뉘었다. 김혜윤의 마음은.
▶시나리오를 다 보지 않았을 때와 작품을 할 때는 하루에게 마음이 갔다. 하루와 러브라인이기도 하고 애정신도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랬다. 그때는 백경이의 서사가 나오기 전이어서 백경이 너무 나쁘게만 보였다. 나중에 백경의 이야기가 풀리면서 안쓰럽더라. 단오로서가 아니라 김혜윤으로서 백경을 응원하는 마음도 들었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웃음) 감독님도 내 스타일을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도하는 친한 친구고, 하루는 말이 너무 없다. 하루랑 있으면 단오만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 백경도 너무 나를 밀어내서 상처를 받을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김혜윤의 이상형은 뭔가.
▶같이 있을 때 즐거운 사람인가.
-좋아하니까 같이 있으면 즐거운 것 아닐까. 어떤 점을 좋아하는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재미있고 편한 사람. 외형적인 건 글쎄. 지금까지 좋아한 사람들 보면 공통점이 없다. 나는 매력이나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