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이하 '동백꽃')은 한 마디로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였다. 기본적으로는 옹산에 온 주인공 동백이 스스로를 옭아맨 편견을 깨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지만, 그 사이사이 동백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를 조명하며 휴머니즘에 더 집중했다. 특히 현실을 반영한 깊이 있는 대사는 보는 이들을 툭 건드리며 마음을 울렸다. 따뜻한 이야기의 힘은 시청자들에게도 닿았다. 이 '내추럴 본 정'을 담은 드라마가 시청률 2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은 게 우연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드라마의 중심에는 배우 공효진이 있었다. 그는 여린 듯하지만 강단 있고, 소심하지만 소신 있는 동백이의 반전미 넘치는 매력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자칫 지루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동백이는 공효진과 만나 시너지를 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동백이의 행복한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됐다. 배우 본인 역시 이 따뜻한 이야기에 매료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털어놨다. 특히 시골사람들의 정을 담은 서사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을 보며 본인 안에 내재된 냉소가 사라졌다는 그다.
공효진은 '동백꽃 필 무렵'을 본 시청자들에게 '위로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흐뭇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 역시 정과 온기를 담은 작품을 알아봐 준 시청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동백꽃 필 무렵'이 막을 내렸다. 워낙 따뜻하고 훈훈했던 작품이라 떠나보내기 아쉽겠다.
▶작품을 하면서도 너무 좋아서 '꿈이야? 생시야?' 했다. 배우들과도 이런 순간이 다시 안 올 거라고, 와도 10년 정도 걸릴 거라고 이야기했다.(웃음) 모든 스태프들이 한 목적을 갖고 운명 공동체처럼 일하다가 해산하지 않았나. 그래서 모두가 후폭풍이 크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이별을 생각하기 전에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이룬 것을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먹먹하지만, 우울하게 지내기보다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중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그래서 엠티에 가서도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하고 마무리했다.
-마지막 회 시청률이 23.8%(닐슨코리아 전국 집계 기준)를 기록했다. 이렇게 잘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숫자 자체가 줄어들지 않았나. 잘 되면 25% 나오던 시대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 잘 되면 15~16%, 18%가 나오면 대박이라고 봤다. 그런데 20%가 넘기 시작하는 거다. 솔직히 대본이 뒷부분까지 계속 좋을 줄 몰랐고, 시골 사람들의 정에 시청자들의 마음이 움직일 줄도 몰랐다. 20대, 30대가 이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진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람 간의 정이구나', '내추럴 본 정은 세월이 가도 똑같이 느끼는구나'라고 싶었다. 신드롬급 드라마를 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놀라운 경험을 했다.
-'동백꽃 필 무렵'이 그리는 따뜻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대본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입이 아파서 더 못할 정도다. 고두심 선생님도 '어쩜 대사가 이러냐'고 하실 정도였다. 내가 봤을 때 이 드라마의 매력은 작가님이 시제를 꼰다는 거다. 2주 전 엔딩에 나온 사건에 대한 설명이 이제야 나와도 내용이 삐걱거리지 않는다. 14부 초반에 향미가 죽은 게 나오는데 이후에 그 친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가 줄줄이 나온다. '향미가 죽었다'를 말해버리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 용감함도 대단하다 싶었다. 또 모든 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작가님이 이야기꾼이다. 항상 이야기가 차고 넘쳤고, 한 회에 다 들어가기가 빡빡했다. 그래서 작가님이 내용을 줄이면서 아까워 죽겠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대본이 너무 재밌으니 뭘 줄였는지가 너무 궁금한 거다.(웃음) 한 회 정도 더 있었다면 천천히, 풍부하게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끝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동백이의 내레이션이다. '내 인생은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는 쉬지도 않고 달려드는데 발 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 그들과 뿌리를 섞었을 뿐인데 이토록 발 밑이 단단해지다니. 이제야 옆에서 꿈틀댔을 바닷바람, 모래알, 그리고 눈물 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라는 그 대사가 너무 좋았다. 이 대사가 쓰인 대본에 '하늘'이 굵은 글씨체로 쓰여 있는데 그 순간에 강하늘이 뛰어온다. 그런 디테일과 이어지는 대사가 참 와 닿았다.
-드라마 속 향미와 동백이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동백이가 자신을 잃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나도 향미를 보내고 그 생각을 많이 했다. 동백이와 향미 둘 다 어린 시절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다. 그러다 동백이는 옹산에 와서 사랑받을 준비를 한 것 같다. 아마 동백이에게 필구가 없었으면 다르게 살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종렬이가 동백이에게 엄청난 걸 준 거다. 살아야 할 이유 필구와, 버틸 수 있게 한 이유 옹산을 알려준 게. 종렬이를 만나면서 동백이가 향미와는 다른 인생을 설계한 게 아닐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겠나.
-'까불이 찾기'가 드라마의 한 축이지 않았나. 온 시청자들의 관심이 여기에 쏠리기도 했다.
▶까불이를 촬영할 때도 세 명의 배우가 같은 장면을 찍어서 누구인지를 모르게 했다. 가범이 먼저 잡히고 진범이 이어 잡힌다는 설정은 알았지만, 나도 그 외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까불이가 헬레나라는 추측도 나왔다. 필구는 여기에 한참 속았고. 소장님은 본인이 까불이라고 의심받는 걸 즐겼다.(웃음) 까불이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나온 걸 안다. 특히 향미 트랜스젠더 설이 제일 황당했다. 친구들은 동백이 엄마를 의심하기도 했는데, 모성을 강조하는 드라마에서 그럴리는 없지 않은가. 그런 추측들이 재미있었다.
▶방송을 보고 나면 정말 서로 칭찬하기 바빴다. 글로만 봐도 훌륭한 대본으로, 모두 예상보다 더 멋진 플레이를 해냈다. '케미'가 잘 살아난 것 같다. 배우들이 다 잘 해낸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정세 오빠가 신을 만드는 걸 보면서 정말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좋은 의미로 화려한 연기를 하고 있더라. 하늘이도 그렇다. 연기가 화면을 꽉 채우고 에너지가 '뿜뿜' 나온다. 옹산 언니들도 극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는 그런 타입의 배우가 아니다.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소박하게 연기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정은 언니가 나와 비슷한 타입이다. 우리가 이쪽을 전담 마크하고, 다른 사람들이 에너지를 뿜어내고…합주회를 잘 해낸 느낌이다. 그 시너지가 너무 좋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많은 걸 배운 작품이어서 헤어질 때 같이 울고, 작품이 끝나지 않기를 창피하지만 바랐다. 나중에 정세 오빠가 애매하게 분량이 남아서 매일 한 신을 촬영해야 했는데, 오히려 본인은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백이도 매력적이지 않았나.
▶대본 안에서 동백이가 가장 단순한 인물이었다. 남들은 사투리 쓰는데 나는 아니고… 그래서 소장님 대사 따라 하고 그랬다.(웃음) 동백이가 극 안에서 제일 단순하고 플랫한 역할이라 초반에는 아쉽기도 했다. 지금은 아쉬움이 전혀 없고, 워낙 좋은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 캐릭터는 다 매력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