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은 스탠드업 개그 프로그램의 황금기였다. 그 가운데 선두에 선 KBS 2TV '개그콘서트'는 수많은 스타 코미디언을 탄생시킨 곳이다. '개그콘서트'에서 말만 하면 유행어가 되고, 출연하면 스타로 떠오르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함께한 이들은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누군가는 연예계를 잠시 떠났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분야에 개척, 도전했다.
그때 그 'OB'들이 '갈갈이 패밀리 2018 개그콘서트'로 다시 뭉쳤다. 지난 8월 '코미디위크 in 홍대'를 통해 개그를 향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 뒤, 공연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다시 의기투합한 것. '맏형' 박준형은 추억을 함께 쌓은 개그계 동료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모든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무대를 그리워했던 정예 멤버들이 다시 뭉쳤기에 재미가 폭발한 건 당연했다.
'개그계 레전드'들은 오는 11월 10일 열리는 '갈갈이 패밀리 2018 개그콘서트'를 통해 또 한 번 추억의 웃음을 전한다. 최근 '개콘' OB들은 공연 준비에 한창이다. 그중 인기 코너 '우비 삼남매'의 박준형 권진영 김다래와 알프레도 캐릭터로 인기를 끈 김인석을 만났다. 특히 이들 중 김다래는 '우비 삼남매' 이후 오랜 기간 방송계를 떠나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어느덧 40대가 돼 만난 이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네 사람은 그간의 회포를 푸는 한편, 서로 '디스'를 주고받고 추억을 소환하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유쾌하고 즐거운 자리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 8월에 코미디위크 공연으로 '개그콘서트' 베테랑들이 다 모였다.
▶ (박준형) 우리끼리 사석에서 소규모로 보기는 했지만 공연 때문에 이렇게 모두 모인 것은 15년 만이다. 우리 스스로 굉장히 벅차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 우리끼리 감동인 것 같다. (웃음)
▶ (권진영) 맞다. 우리 스스로 감동적이다. (웃음)
▶ (박준형) 코미디위크 공연을 위해서 뭉쳤을 때 오랜만에 무를 갈았다. 그렇게 감동적이더라. 무의 아린 맛과 감동의 눈물이 합쳐졌다. '무아일체'의 기분을 느꼈다.
▶ (권진영) 선배가 무를 갈 때 우리 다 울었다. (웃음) 오케스트라 공연 끝나고 기립박수 치듯이 다 일어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 (김인석) 오히려 지금 시대에는 무를 가는 게 더 신선한 개그일 것 같다. 패션도 20년마다 트렌드가 돌아온다고 하지 않나. 새로운 개그 느낌이다.
▶ (박준형) 무를 가는 기술은 전세계 1등이다. 뭐든지 세계 1등이면 된다. (웃음)
▶ (권진영) 선배님 아이들도 오지 않았나.
- 아이들이 아빠의 예전 개그를 보는 건 처음이지 않나. 특히 무를 가는 건 무척 신기해했을 것 같다.
▶ (박준형) 직접 본 건 처음이다. 내가 뮤지컬을 할 때 보러 온 적은 있는데, 아빠가 하는 개그콘서트를 본 것은 처음이다. 과거에 인기 코너를 모으다 보니 내가 여러 코너에 나왔다. 아이들 눈에는 '우리 아빠가 주인공을 한다'고 생각하더라. 아빠 입장에서 기분이 좋고 뿌듯하더라. 첫째가 '생활사투리' 코너 광팬인데, 마침 그때 화장실을 가서 못 봤다고 막 울더라. (웃음) 둘째는 '우비 삼남매' 코너를 좋아한다.
▶ (김다래) 다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만 싱글이다. (웃음)
▶ (권진영) 다래는 정우성 실물을 본 이후로 연애를 못 한다. 마음 속으로 비혼선언한 것 같다. 하하.
- 어떻게 다시 뭉칠 생각을 했나.
▶ (박준형) 그동안 코미디페스티벌을 나가지도 않았고 예전 개그들을 다시 하지 않았다. 홍대코미디위크를 진행한 윤형빈이 전화로 코미디위크 중 한 코너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다가 이왕 하는 거 다같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연락을 돌렸다.
▶ (김인석)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연락 받은 것 같다. 왜 내가 마지막이었나.
▶ (박준형) 인석이와는 그동안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으니까, 연락 안 되는 사람들 먼저 한 거다. (웃음)
- 추억의 개그 코너를 다시 본다는 반가움도 있지만, 20년 전 개그를 다시 하는 게 고민되지는 않았나.
▶ (박준형) 요즘 개그와 예전 개그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만고의 진리는 웃긴 건 웃기다는 거다. 예전 방식이어서 안 웃기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그때 웃겼으면 지금도 웃기다는 믿음이 있다. 다만 요즘 개그 스타일에 맞춰서 더 빠르고 간결해진 것이다. 이 콘서트를 같이 하는 멤버들은 극장에서 최소 3년 이상 많게는 10년 정도 트레이닝을 한 사람들이다. 공연쟁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그간의 개그를 집약한 '농축'개그를 보여드리려고 한다. 걱정은 조금도 없다. 어쩌면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다시 15년 후에 만날 수도 있다. (웃음) 그때는 사재를 털어서 한번 시도해보겠다.
▶ (김인석) 사실 준형이 형은 공연을 안 해도 되는데 하는 거다.
▶ (권진영) 이미 엄청 부자다.
▶ (김인석) 사실 출연료를 나누면 각자 가져가는 돈도 거의 없다. 그래도 우리가 모여서 공연을 만들고 무대에 서는 게 너무 좋아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다. 예전에는 형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웃음)
▶ (김다래) 그때는 선배가 엄청 커보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선배도 애기였다. 30대 초반 아니었나.
▶ (김인석) '개콘'의 반장같은 느낌이었다. 리더십이 있는 맏형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몇 살 차이 안 나고 다들 어렸다. 초등학교 6학년과 1학년 같은 느낌.(웃음)
▶ (박준형) 조금 더 새로운 개그를 선보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최종적인 목표는 프로그램이다. 공연도 하고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싶다.
- 프로그램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만들고 싶다는 건가.
▶(박준형)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은 방송사 내부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힘들다. 진짜 코미디언이 만드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싶다. 예전에 '마빡이' 코너는 2002년에 하자고 한 코너였는데 (자꾸 반려돼) 2007년에 나왔다. 검사를 세 번이나 더 맡아서 나온 거다. 코미디언과 아닌 사람의 눈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꼭 만들고 싶다.
▶ (김인석) 꼭 우리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만들고 싶은 거다. 우리가 감독이 되어 후배들도 양성하고 그런 그림이 좋지 않겠나. 배우들도 후배 양성하는 경우 많지 않나. 그런 것이다. 나는 송은이 선배가 되게 멋있는데 그런 이유다. 송은이 선배는 직접 필드를 뛰는 플레이어지만 판을 만들어 후배들을 키우는 역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