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쉽지 당당하게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세상엔 수많은 눈과 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고 듣는다는 건 단순한 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평가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눈과 귀로 시작되는 생체 메커니즘은 '보고 들었기 때문에 어떻다'라는 식으로 늘 진행된다. 그게 무서워 사람은 누구나 주변 눈치를 살피기 마련이다.
그럴 때 보통 기준이 되는 게 바로 '다름' 아닐까. 남들과 다르면 본인 스스로 이상하게 위축된다. 소위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분명 다름은 틀림과 다른데도 다름으로 인해 틀렸다는 죄의식이 영혼을 쉽게 뒤흔들고 만다. 당당하게 산다는 것의 요체는 어쩌면 남들과 달라도 눈치 보지 않는 삶의 태도에 있지 않을까.
<차이나타운>을 이야기하면서 영화보다 '김혜수'란 배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던 건 솔직히 영화가 내 입맛에 그닥 맞지 않았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찌르고 때리는 잔인한 장면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무엇보다 스토리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인물들 간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대체로 칼과 몽둥이로 난장판을 만들어버린 뒤 이른바 '느와르'라는 장르적 쾌감으로 덮어버린다.
그래도 모름지기 어떤 영화든 관객들에게 할 말은 있기 마련.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사랑이야기"라는 한 네티즌의 100자평이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 닿았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에는 김혜수란 배우가 나온다.
내 취향과는 달리 제68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될 정도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차이나타운>의 여주인공 김혜수씨가 모든 영화인들의 꿈인 칸 영화제 대신 미얀마 봉사활동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영화와 관련해서는 '김혜수'란 배우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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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란 배우는 사실 원조 베이글녀다. 마흔을 넘겼는데도 여전히 해맑은 미소는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함께 세간의 시선을 끌기에 이미 충분하리만큼 매력적이다.
소싯적 하이틴 스타였던 그녀는 처음에는 그렇게 외모 때문에 빛이 났다. 그건 사십대가 꺾인 지금도 여전하지만 이제 그녀가 빛나는 이유는 그녀의 당당한 삶의 태도 때문이라는데 대부분 공감할 것이라고 본다.
공식 석상의 파격적인 노출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 이번 <차이나타운>에서의 망가진 역할에서 정점을 찍는다.
검버섯 가득한 얼굴에 불룩 튀어나온 배, 아름다움이 무기인 여배우로서 쉽지 않았을 결정이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김혜수'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차이나타운>에서의 대모 역을 오래 고사했던 건 망가짐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의 무게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차이나타운>에서 나를 압도하게 만든 건 잔인한 장면보다 극중 엄마(김혜수)의 숨 막히는 카리스마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카리스마는 극중 엄마란 역이 아니라 김혜수란 배우 자체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가진 자의 여유일 수도 있다. 엄청난 경쟁률의 영화판에서 어느 배우가 역할을 마다할까. 하지만 그녀의 이번 배역 선택이 유독 빛이 나는 건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 아닐까.
그건 애정을 듬뿍 쏟았던 이번 영화가 칸 영화제에 초청됐지만 일정이 겹치자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얀마 봉사활동을 선택한 것과 최근에 밝힌 그녀의 결혼관에서 특히 두르러진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결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정말 하고 싶으면 할 거다. 안 할 이유도 없다. 일 때문에 결혼을 안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물론 없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정감 있긴 하지만 그 틀은 내가 만든 게 아닐 뿐더러 정답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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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에서 김혜수가 레드카펫을 밟고있다. © News1 권현진 기자 |
결국 나는 파격적인 노출도, 그 대칭점에 선 이번 <차이나타운>의 망가진 역할도, 칸 보다 미얀마를 선택했던 것도, 또 오십을 앞두고 있는데도 여태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다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본다.
모두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려는 그녀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주변 눈치 신경 쓰지 않고 어찌 그리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걸까.
김혜수씨를 직접 만나서 묻고 싶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고, 개인적으로 추측을 해본다면 아마도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닐까.
그녀가 그럴 수 있는 건 원래 자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행복의 비결이란 별 거 없다. 자신이 원하는 걸 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나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들 눈치가 두려워 원래의 자신을 포기하며 살아가던가.
꼴에 남자다 보니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 김혜수란 배우를 예전에는 예뻐서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한 그녀의 삶이 너무 좋다. 부럽다. 그래서인지 TV나 영화를 통해 그녀를 보면 자꾸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받는다.
"당신은 지금 얼마만큼 당신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