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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23 12:53
눈산조망대/무관용의 ‘고식지계’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1,601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무관용의 ‘고식지계’
 
언젠가 등산하다가 바지자락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졌다. 무르팍 맨살이 허옇게 보이자 동료가 찢어진 옷에 밴디지를 붙여줬다. 말 그대로 미봉책(彌縫策)이다. ‘일을 완벽하게 하지 않고 부녀자나 아이들의 계책처럼 어설프게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고식지계(姑息之計)도 비슷한 말이다. 옷 수선가게에 맡기거나 새 등산복을 사는 것이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사흘 전 고집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답지 않게 꼬리를 내려 스타일을 구겼다. 밀입국자들의 어린 자녀들을 부모와 격리시켜 구금토록 한 소위 ‘무관용(Zero Tolerance)’ 정책에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급기야 이를 번복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얼핏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연방 법무부의 한 고위관리 말처럼 ‘stopgap(미봉책)일 뿐이다.

트럼프는 자녀들을 떼어놓지 않고 부모와 함께 구금토록 한 조치라며 무관용 정책은 여전히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제프 세션스 연방 법무장관이 밝힌 이 정책은 밀입국자들을 이유 불문 형사범으로 기소하고 그들의 자녀들은 부모와 격리시켜 연방 보건복지부가 관리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밀입국자는 경범으로 처벌하며 구금기간도 길어야 6개월이다.

무관용 정책이 발동된 뒤 2,300여명의 불법입국자 자녀들이 전국 이민국 구치소에 분산 수용됐다. 바닥에서 알루미늄 포일을 이불삼아 덮고 자며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꼬마들의 참상이 보도되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이 전혀 미국답지 않다고 했다. 올 중간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박빙 선거구의 공화당 의원들도 낙선이 두려워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

로잘린 카터, 힐러리 클린턴, 로라 부시, 미셸 오바마, 멜라니아 트럼프 등 전현직 퍼스트레이디 5명도 무관용 정책이 비인도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했다. 유엔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꼬집었고, 프란시스 교황도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점잖게 나무랬다. 페이스북의 한 모금페이지는 격리된 아이들의 부모상봉을 돕기 위해 닷새 만에1,100만달러를 모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꿈쩍 않는다. 그는 밀입국자 자녀들을 20일 이상 구금할 수 없도록 한 소위 ‘플로레스 합의판결’을 제소하도록 세션스 장관에 지시했다. 현재 수용된 어린이들을 부모와 함께 무기한 구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려는 속셈이다. 지난 1985년 이민국을 상대로 제기된 플로레스 소송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7년 쌍방합의로 끝났다.

반 이민정책은 트럼프의 대표적 선거공약이었다. 그는 멕시코인들을 강간범으로 몰아 붙였다. 멕시코국경에 장벽을 쌓고, 1,100만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장담했다. 최근에도 중남미 국민들이 해충처럼 미국을 어지럽힌다는 글을 트윗했다. 선대 대통령들이 ‘잡았다 놔주기(catch-and-release)’식 이민정책으로 일관했다며 비아냥하기 일쑤였다.

트럼프의 극단적 이민정책은 그의 지지기반인 백인 보수중산층을 신바람 나게 한다. 무슬림국가 출신 여행객들의 미국입국 금지도, 오바마 행정부가 제정한 DACA(청소년 불체자 추방유예 법) 폐지도 그랬다. 이번 무관용 정책도 미국에 밀입국했다가는 자녀와 생이별한다는 것을 중남미인들에게 보여줘 이들이 국경에 얼씬도 못 하도록 겁주려는 속내였다.

이민자들의 생이별은 전에도 있었다. 오리건주 한인 입양인 아담 크랩서씨는 40년만에 불법체류 전과자임이 밝혀져 2016년 부인과 두 딸을 남겨두고 전혀 모르는 한국으로 추방됐다. 2014년에도 시애틀의 두 멕시코인 불법체류자가 추방돼 가족과 생이별했다. 남북한은 오는 8 625 이산가족의 재상봉을 추진하는데 미국은 이산가족을 양산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트럼프의 궁극적 목표는 따로 있다. 불법체류자들을 생이별로 겁주는 미봉책이 아니라 이민법을 원천적으로 뜯어고쳐 합법 이민자 수를 절반정도로 줄이고 ‘미국을 더 하얗게’ 만들자는 것이다. 놀랍게도 무관용 정책의 비난 와중에 실시된 갤럽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그의 취임 첫 주만큼 치솟았다. 미국인들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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