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실세 김양건 핵실험 강행 군부에 암살 가능성…전문가들은 가능성 낮아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으로 북한의 대남 실세였던 김양건 전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또다시 회자되는 모양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가 있었고 지난 3일에는 핵실험 최종 명령에 서명했다.
그 사이 대남 실세라고 불린 김양건이 지난달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이 죽음이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교통사고가 아닌 내부 권력 다툼에 따른 암살 등 음모론이 바로 그것이다.
핵실험을 앞두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 같은 추론에 적지 않은 설득력이 실린다.
북한판 걸그룹이라고 불리는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을 돌연 취소하고 귀국한 날짜는 지난달 12일인데 이는 김 제1비서가 핵실험 지시를 내린 15일에서 불과 사흘전이다.
당시 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를 놓고 그 배경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됐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 제1비서가 발언한 수소탄 발언이다.
앞서 김 제1비서는 지난달 10일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이 울린 역사의 총성으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이 됐다"고 언급했었다.
김 제1비서가 발언한 수소탄 발언은 북중간의 갈등을 유발했고 결국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이를 계기로 김 제1비서가 수소탄 시험의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간 북한이 핵실험을 주저한 배경에는 중국의 만류 때문이었는데, 모란봉악단 공연 취소를 전후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더이상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김양건의 죽음에도 같은 이유에서 모란봉악단과 같은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남 총책인 김양건이 강경 군부와의 힘싸움에서 밀려 암살 당했을 것이라는 설(說)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김양건의 교통사고는 지난달 29일 발생했고 이 시기는 이미 북한이 핵실험을 한창 준비하던 시기였다. 지난 8·25 합의를 이행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수순을 밟고 있던 시기에 8·25 합의의 주역이었던 김양건이 사망한 것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강경파인 군부와 전문 관료 출신인 테크노크라트들이 주도했다. 대화 국면에서는 테크노크라트들이 입김이 작용했고, 대결 상황에선 군부가 주도권을 행사했다.
'8·25 합의'를 이끌어내며 남북 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는 김양건이 군부에게는 눈엣가시였을 수 있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김양건이 수소탄 시험을 밀어붙이려는 군부와 대립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김양건의 죽음으로 '8·25 합의'가 사실상 깨진 것 아니냐는 관측은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물론 김양건 사망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은 결과론적으로 다소 섣부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뉴스1과 통화에서 "음모론적 차원에서 그렇게 볼 수는 있으나 시간상으로 차이가 난다"며 "김정은이 핵실험 지시를 내린 것이 지난달 15일인데 김양건의 사망은 29일로 시간상으로 많은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도 "김양건은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실무 관료"라며 "단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