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 "원내대표 물러나도 개혁보수 길 계속 가겠다"…朴과 완전한 결별
與 신보수vs전통보수 대결구도로 개편 급물살 탈 듯…총·대선 '간판' 경쟁 가열 전망
이른바 '유승민 정국'이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로 마무리 됐으나, 물러나는 유 원내대표가 '새로운 보수' 기조를 거듭 선언하면서 여권의 본격적 '노선투쟁' 전개를 예고했다.
이날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기점으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이 다가올수록 새누리당이 내걸 '간판'을 둘러싼 세력 대결은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촉발된 사상 초유의 이번 여권 파워게임의 이면에는 보수 진영 내 노선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은 일찍부터 제기돼왔다.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전통 보수 세력과 박 대통령의 색을 지워낸 '좌클릭 중도화'를 지향하는 유 원내대표 등 신보수 세력 간 대결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여권 내 노선 경쟁이 있어오다가, 유 원내대표를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축출'하는 이날의 사태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유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경선 출마 전부터 원내대표에 당선된 이래로 일관되게 "경제와 복지, 교육, 노동 등은 진보적으로 가야한다"며 '신보수' 실현을 위해 당이 중심에 서겠다고 주창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 정서가 큰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원내대표 지지그룹이 형성됐다. 이들은 이번 사퇴 논란 정국 속에서도 유 원내대표의 우군을 자처했다.
황영철 의원(재선·강원 홍천횡성)이 이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는 앞으로 새누리당이 가야 할 방향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뽑은 게 아니냐"며 보수 개혁을 위해서라도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선 안된다고 주장한 점이 대표적이다.
유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신보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취임 일성으로 "법인세 인상"을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와 정반대 목소리를 냈고, 전통 보수 세력이 꺼리는 진보 이슈인 '협동조합'을 여권이 선점해야 한다며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추진했다.
백미는 유 원내대표의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4월8일)이었다. 당시 연설에서 그는 "보수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선언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인 '증세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했다.
친박(박근혜)계에서 "유승민을 더이상 내버려둬선 안된다"는 '비토'가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계기 역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었다. 이 연설이 박 대통령을 향한 항명이자 '자기 정치'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는 게 친박계의 주장이다.
유 원내대표와 함께 '비박계 투톱'이라 불리는 김무성 대표 역시 유 원내대표의 이같은 좌클릭에 대해서는 공공연히 우려를 표명했다. 이념 좌표상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가 주창하는 신보수 보다는 박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전통 보수와 가까워서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7월 중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새해 예산안 및 세제개편안 처리 등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의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업적으로 길이 남을 공무원연금개혁 법안처리를 꼭 이뤄내겠다는 생각 하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자기 노선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싶은 욕심 때문에 공무원연금개혁 협상에서 야당의 국회법 개정안 끼워넣기 요구를 받아줘 이번 사태가 생긴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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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를 밝힌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2015.7.8/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6월25일)한 지 13일 만인 이날 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총의 권고에 따라 사퇴했다.
이로써 표면적으로는 유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꺾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는 '더 큰 싸움'을 시사했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더욱 분명하게 '개혁보수' 노선을 강조했고, '대통령'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박 대통령을 향한 반박을 내놨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은 것은 제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약속한 '용감한 개혁',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진영을 넘는 합의의 정치'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계속 가겠다" 등이라는 유 원내대표 사퇴의 변은 여권 노선 투쟁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원내대표를 물러나더라도 박 대통령과 분명히 다른 '새로운 보수'의 길을 꼿꼿이 걸어가겠다는 선언이면서, 행간에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비민주적인 세력'이라는 뜻도 담았다고 분석된다.
당장 친박계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의 변을 두고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유 원내대표는 자신과 같이 경제와 복지 등에서의 '좌클릭'에 동의하는 그룹의 중심 좌장 역할을 하면서 꾸준히 정치적 재기를 도모할 전망이다. 측근인 김세연·이종훈·민현주·이재영 의원 등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유승민 사단'이 대표적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유승민식 보수 없이 총·대선 승리는 힘들다"는 주장은 여전하기 때문에, 유 원내대표에게 우호적인 의원들도 뜻을 같이 할 전망이다. 원내대표단 소속인 유의동(평택을)·홍철호(김포) 의원 등도 유 원내대표와 같은 길을 계속 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에서 당장 '우클릭'을 지향하는 야권 세력과 유 원내대표 등 신보수 세력이 손을 잡고 신당을 창당하지 않겠느냐는 섣부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과거 새누리당을 떠난 쇄신 성향의 인사들, 새정치연합 내 중도 세력에 속한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하다.
그러나 전통 보수를 지향하는 이들도 유 원내대표의 '마이웨이'를 그냥 두고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51대49 싸움인 선거에서 박 대통령 없이 승리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진 의원들도 상당해 유 원내대표 세력과 대립하는 세력도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 원내대표와 같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거친 경제학자 출신 강석훈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모두 부정했다"고 말했다.
여당 다른 경제통 의원도 "'신보수'로 노선을 바꾼다고 해서 외연이 확장된다는 증거가 없다. 오히려 중도화를 꾀하면서 치른 19대 총선에서 서울 48개 중 16석을 사수하는 데 그치지 않았느냐.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의석수였다"며 "유승민식 신보수가 총·대선 승리에 필요하다는 명제에 동의할 수 없다. 유 원내대표는 자신의 세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그 길을 택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