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은 가능성 거의 반영하지 않은 상태"
미국에서 국경세가 도입되면 글로벌 시장은 새판짜기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두 자릿 수 상승률을 기록하고 달러는 1980년대 이후 가장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막대한 판도 변화가 우려되지만 실제 이러한 새 판세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은 아직 거의 없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전했다.
미국이 수입품에 20% 관세를 매기는 '국경세'를 도입하면 달러는 25% 랠리를 보일 것이라고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예상한다. 골드먼삭스 애널리스트들은 WTI가 현재 54달러 수준에서 65달러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먼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정책에 참고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현재 1.6%에서 2.4%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그레그 앤더슨 BMO 캐피털마켓 외환전략 글로벌 대표는 "국경세는 수 년 만에 세계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러한 가능성에 베팅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지난달 골드먼에 따르면 국제원유 시장 참여자들은 국경세의 법제화 가능성을 9%로 잡고 있다.
국경세가 실제 법제화할지 혹은 어떤 형태가 될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도 국경세에 대해 "너무 복잡하다"고 지난달 WSJ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월가에서도 국경세 도입 가능성에 대한 비관론이 여전하다.
크레딧스위스의 알비스 마리노 외환전략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1차로 잡고 있는 정책 우선순위 가운데 국경세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9일 트럼프는 앞으로 2~3주 안에 획기적인 세금 정책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세금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달러는 올 들어 주요국 통화 대비 2% 떨어져 지난해 대선 이후 랠리를 절반 반납했다. 국경세는 달러를 끌어 올릴 요인이다. 외국인들이 미국에 덜 수출하면서도 미국산을 더 많이 구입하려면 미국 달러를 더 많이 사야하기 때문이다.
국경세 지지론자들은 이러한 달러 오름세가 국경세로 인한 손실을 상쇄하기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산 자동차부품에 20% 수입관세가 붙으면 멕시코 페소도 비슷하게 절하돼 가격은 미국의 수입업체와 소비자들 모두에게 안정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전망이 오직 경제학 원론에 의존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실 세계에서 달러는 국경세 도입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그렇게 빠르게 혹은 크게 상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HSBC홀딩스의 다라그 마헤 미국 외환전략부 대표는 달러와 다른 외국 통화의 가치는 주식, 채권과 같은 금융자산의 수요에 따라 대부분 움직인다고 말했다. HSBC에 따르면 무역이 미 달러의 일일 트레이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국경세 도입은 미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같은 이머징 마켓에 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중국산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달러 강세에 따른 위안화 하락 압박이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크레딧 스위스는 국경세가 도입되면 아시아의 수출품이 3~4% 줄어 지역의 성장률을 0.5%포인트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산운용사 이튼밴스의 에릭 스타인 글로벌 채권 공동 디렉터는 국경세 도입시 싱가포르 달러와 중국 위안이 떨어지고 미국의 물가연동국채(TIPS)가 오를 것으로 베팅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