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완 주
시애틀총영사
-6ㆍ25전쟁 정전 60주년 및 한미동맹60주년을 맞아
올해는 6ㆍ25전쟁 정전 60주년이자
한미동맹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63년 전 6월 25일 새벽, 북한
내 소수집단의 오판으로 촉발된 전쟁은 3년간 지속돼 우리 역사에 유래 없는 큰 고통과 끔찍한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6ㆍ25전쟁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사료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사료도 많이 공개돼 비교적 명확히 진상이 파악된바
있다. 북한은 전쟁 도발에 앞서 오랜 기간 준비했고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확보한바 있다.
만약 미국을 비롯한 병력기여 16개국, 의료지원단 파견 5개국, 물자지원 40여 국가가 유엔의 침략격퇴 요청에 부응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 한국의 모습은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북미
출신 1,042명 한국전서 사망
미국은 6ㆍ25전쟁 기간 중 180만
명에 달하는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이중 3만6,000여명이 전사했다.
이곳 서북미 지역 부모들도 한국에 파병한 1,042명의 아들, 딸들을 가슴에 묻었다. 미국 참전용사들 중 한국에 파병되기 전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개인은 물론 미국
정부조차도 6ㆍ25 전쟁 초기엔 한반도 상세지도가 없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지도를 복사해 병사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한다.
그런 머나먼 나라에서 흘린 참전 용사들의
피와 땀은 고귀함 이상이다. 이들의 희생을 국익이라는 잣대로만 평가한다면 냉철함보다는 냉혈함에 가까울
듯하다.
필자는
30여년의 외교관 생활을 하며 여러 곳에서 6ㆍ25전쟁 관련 행사에 참여해왔다.
6ㆍ25행사에서는 비교적 건강한 참전용사들과 마주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참전 용사들에게도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고마운 마음을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부임한 이래 워싱턴주에 있는 3개의 원호병원 모두와
오리건주 유일의 델스소재 원호병원, 그리고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있는 원호병원에 한국군 참전용사 및 동포
대표들과 함께 방문했다.
“그저
서로 고맙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지난해
방문한 워싱턴주 한 원호병원에서는 91세의 여군 노병이 사은행사가 한창인 강당을 찾아왔다. 휠체어에 앉은 노병은 자신을 2차 대전 참전용사라고 소개했다.
그분은 한반도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6ㆍ25전쟁기간 중 일본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보급지원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 행사에 참석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원호병원에 입원한 지난 17년간 여러 전쟁의 참전용사를
찾아준 외국정부 대표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한국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50년 이상을 병상에 누워있는 노병을 만났다. 사전에 간호사로부터
그가 청력을 모두 잃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병상에서 그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자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도 서로 뭔가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 어느 나라 말인지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한미동맹
없었다면 한강기적 불가능
1953년
우리나라는 탈진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했다. 모든 국민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대다수는 빈곤과
굶주림에 허덕였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을 지닌 나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국이 됐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가전제품ㆍ반도체ㆍ선박ㆍ철강ㆍ자동차 생산능력은 모두 세계 최고수준이며,
이를 바탕으로 세계 7대 교역국이 됐다.
이는
모든 국민이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이다. 이러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는 자랑스런 민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자.
과연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난 60년간 경제개발과 사회복지 그리고 과학기술 기반확충에 과감하게 재원을 투입할 수 있었을까? 6ㆍ25전쟁 이래 한결같이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군사력증강에 쏟아
붓는 북한을 마주하고서도 말이다.
고교생 69%는 6ㆍ25전쟁을
북침으로 알아
얼마
전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ㆍ25전쟁을 북침이라 답하였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물론 북침이라는
용어의 뜻을 모르고 답한 학생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오죽하면 박근혜대통령께서 직접 우려를 표하시고 역사교육을
바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을까. 한때 6ㆍ25전쟁 북침설이 수정주의 사관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일부학자들 사이에 퍼졌던 시기가 있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궤변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음에도 정작 우리나라에서 이를 믿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니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시애틀 부임 전 1년 반 동안 유엔안보리 산하의 북한제재위원으로 활동한바 있다. 그 기간 중 미국은 물론 아시아ㆍ유럽ㆍ중동ㆍ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로부터 북한의 각종 불법행위에 관한 정보브리핑을
받았다.
각국의 전문가들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북한에 관한 다양한 시각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공감하는 바는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며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브리핑하는 내내 북한문제를 “코리안 퀘스천”이라 칭하였다. 코리안인 나는 왠지 마음이 어두워짐을 수없이 느꼈다.
북한과
대화 설득이 분단시대의 숙명
인간은
생리적으로 괴로움을 잊고 피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북한은 우리에게 한없는 불행과 고통을 주어왔다.
북한 공산치하와 6ㆍ25전쟁을
겪은 세대는 물론이고 나와 같은 전후세대에게도 북한은 즐거운 토론주제도, 반가운 대화상대도 아니다.
우리의 일부 젊은 세대가 북한문제를 외면하고 통일에 무관심을 표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북한을 생각하고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 남북
분단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숙명인 것을, 그리고 하루라도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 후손을 위함은
물론, 수많은 애국지사와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대한 최선의 보답인 것을….
**편집자 註:송영완 대한민국 주 시애틀총영사가 한국일보 6ㆍ25 정전 60주년을 맞아 시애틀 한국일보에 특별기고한 글을 옮겨 실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