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나(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새해 아침에
새해가 밝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날을 맞는다.
다시 출발점에 서서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상상해 본다. 나와 동행할 올해의 삶은 어떠한 모습일까? 꿈과
희망을 품어보지만 무엇보다 줏대 있고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싶다. 각오와 다짐을 새롭게 하는 새해는
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뛰는 가슴 사이로 어린 시절에 겪은
설날의 추억이 슬며시 파고든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웃음과
인심이 넉넉하여 정겨웠던 설날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장손인 우리 집은 명절날이면
북적이는 방문객들로 잔칫집 분위기였다. 아침 일찍부터 부엌에서는 부지런히 설 음식상을 차려냈다. 설빔으로 곱게 단장한 우리 형제는 집에 오신 어른들께 세배하느라 바쁜 하루였다. 한복에 달린 복주머니도 덩달아 두둑해졌다.
설날에는 전통적인 명절 음식들이
풍부했다. 어머니는 나박김치나 찜 등 미리 익히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부터 시작하여 한과 식혜 등
후식까지 준비하셨다.
설날 하루 전엔 만두를 빚으셨다. 만두소는
집마다 넣는 재료가 조금씩 달랐다. 우리 집은 고기에 양파, 호박, 숙주, 두부를 넣어서 담백한 맛이 특징이었다.
많은 양의 만두를 빚을 때는 분업과
협업이 능률적이다. 밀가루를 치대어 반죽하고, 밀대로 얇게
펴고, 소를 넣는 몇 개의 과정을 여럿이 거들고 나눠서 할 때 흥도 나고 힘든 줄도 모른다.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바쁘게 움직이는 손놀림 속에서 앙증맞은 복주머니 모양의 만두가 세를 불려갔다. 그 모습은 내게 여럿이서 협력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는 가족의 설빔도 손수 지으셨다. 부지런한 어머니 덕에 잠자리는 정갈하고 푹신했다. 집안 대소사를
늘 기쁜 마음으로 하셨고 웃음을 달고 사신 어머니. 설날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일하시고 고단하셨을
텐데도 오후에는 동네에서 설음식을 차리지 못한 이웃에게 떡 만두국을 해서 날랐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셨다.
미국으로 이주할 때, 초등학생이던 세 아이가 이제는 장성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산다.
다행히
그들은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려고 애쓴다. 큰 명절인 설날에는 우리 집에 모여서 즐겁고 알차게
하루를 보낸다. 한복으로 곱게 차려 입은 가족들을 보면서 마음이 훈훈하고 뿌듯하다.
우리 부부가 세배를 받는다. 청년으로 성큼 자란 손자들은 새해 인사가
능숙하다. 어린 손녀들의 세배 솜씨는 아직도 어색하지만, 재롱으로
버무리며 웃음꽃을 선사한다. 새해 인사와 더불어 덕담이 넘쳐난다. 또한
각자의 새해 결심도 나눈다.
정성껏 마련한 설음식으로 가족들과
웃으며 식사를 하고 나면 윷놀이가 시작된다. 오르내리는 윷가락 속에 희비가 엇갈리고 함성과 탄식이 교차하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나도 새해에 가족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공중으로 높이 윷을 던진다.
실상 새해 첫날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지나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이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한 날로 정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기에
설날은 의미 있는 날이 된다.
마음 하나로 밋밋한 날을 축제 같은 날로 바꿀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울한 날도 되고, 활기찬 날도 된다. 그래서 고달프고 힘든 날도 물러서거나 외면하지 않고 소중한 날이라고
품으며 씩씩하게 살고 싶다.
열심히 살되 웃음을 잃지 않고 바르게
살되 감사한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았으면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겐 기꺼이 손을 내어주면서,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고 더불어 사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