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수필가(오레곤문인협회 회장)
탐스런 무 이삭을 줍는 기쁨
가을부터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까지 자주 비가 내리고 여름에는 거의 비가 오지 않고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는 것이 이 지역 날씨다.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다 보니 산과 들에는 더글러스 훠와 시더종류의 미송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하게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다.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4,000m가 넘는 위용을 자랑하는 높은 산들이 즐비하고, 캐나다에서 발원하여 워싱턴주와 오레곤주 등 7개주를 적시며 2,000km 이상을 달려온 북미 대륙에서 가장 센 강물을 이용해 14개의 수력발전소가 건설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력 전기를 생산해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촉촉이 대지를 적시며 흐르는 거대한 컬럼비아 강은 수많은 동식물의 젖줄이다.
서쪽애서 넘실대는 거대한 태평양 짙푸른 바다는 세계 최대의 수산물을 품고 있는 보고이다. 알래스카 연안에는 세계 수산물의 3분의 1 이 넘는 어획량을 품고 있는 황금어장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천혜의 자연 속에 수많은 토산품들이 널려있는 지상의 낙원이다.
이러한 풍부한 자원을 품고 있는 지역이라서인지 주민들의 인심도 얼마나 여유롭고 넉넉한지 모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깊은 산간지역이다. 태평양 바다는 30분 거리에 있고 올림픽 국립공원을 가는 길가에 위치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그런대로 운영하는 재미도 있고 각종 토산품을 가져다주는 단골손님들 덕분에 다양한 자연의 선물을 대할 수 있어 좋다.
가을에 접어들고 보니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진귀한 각종 버섯과 각종 생선들을 들고 와서 맛보라고 주고 간다. 다 먹지 못하는 것들을 나누는 재미라니!
각종 싸리버섯 종류와 꾀꼬리 버섯, 계란 버섯 그리고 하얀 속살을 자랑하는 고고한 송이버섯까지 다양한 버섯 종류와 연어·송어·맛조개·굴 ·게 등등 이러한 각종 토산품을 대할 때마다 나에게 이런 풍성한 은혜를 베푸심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오늘은 2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본 교회 대신에 피곤하고 힘들 때 종종 나가는 이 지역 작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2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한 가정에서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나누게 되는데 가끔 갈 때마다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 오늘은 우리 가정에서 대접하기로 했다. 교회 인근에 있는 피자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 농장을 하시는 분이 오늘 우리 농장에 와서 추수하고 남은 무를 가져다 잡수시라고 한다.
며칠만 지나면 계속 비가 올 예정이고 비가 오면 땅이 질어 트랙터가 들어갈 수 없으므로 조만간 갈아 엎을 계획이라고 했다.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왔지만 따라가기로 했다.
가보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넓은 100여 에이커의 드넓은 농장 한 쪽에는 추수하고 남은 탐스런 무와 배추가 가득했다. 몰려간 일행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 들어가서 맘껏 무를 뽑아서 차에 가져다 싣는다. 나도 구두를 신은 채 부지런히 뽑아 나르다 보니 너댓 박스는 됨직하다.
20여 마일 떨어진 친구 집을 마침 찾기로 해서 그곳에 무를 몇 개 나눠줬다. 집에 도착해 차를 세우는데 전화가 왔다. 내가 건넨 무를 깎아 먹어보니 너무 달고 맛이 있다며 무밭이 어딘지 알려달라고 한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장소를 알려 주었더니 내일 아침에 가겠다고 한다.
땀 흘리며 애써 지은 농작물인데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그냥 가져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대도시 인근에 있는 농장에서 농산물 추수철이 지나면 이른 봄에는 시금치 종류를. 가을에는 무나 배추 그리고 대파 이삭줍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내가 직접 해보기는 처음이다.
월요일 다시 가서 배추를 몇 박스 다듬어 가지고 왔다. 농장에 가면서 보니 이웃 농장에는 옥수수와 각종 호박 종류가 밭에 가득했다. 머지않은 할로윈 데이를 겨냥해 키워놓은 노란색 얼룩무늬색 등등 크고 작은 호박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모습이 대단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호박 밭에 가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고르게 해 사주면 그렇게 좋아하던 기억이 새롭다. 한편에는 ‘Corn U Pick’이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드넓은 농장에서 좋은 체험을 하고 마음 속에도 좋은 추억을 한 아름 담아가지고 돌아와 먹고 나눌 수 있는 풍성한 은혜에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