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목(서북미 6ㆍ25참전국가유공자회 회장)
나의 6ㆍ25참전 회상기(回想記)
한반도 역사상 최대 참사였던 6ㆍ25전쟁도 어느덧 69돌을 맞이하게 됐다. 3년1개월간의 처참한 전쟁으로 남북쌍방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고 삼천리 금수강산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총성은 일단 멈췄으나 전쟁자체는 종결되지 않은 채 69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필자는 1950년 전쟁 발발 2개월후인 8월에 자원입대, 간부후보생으로 동래(東萊) 전시사관학교로 알려졌던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한 뒤 같은 해 12월에 육군 포병소위 로 임관했다.
당시 평안북도 덕천에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대구근교 진량 (珍良)으로 후퇴해있던 제18포병대대에 배속됐다. 그후 부대는 대구와 의성을 거쳐 안동에 주둔하고 있을 때 필자가 속해있던 C포대(C중대)에서 탈영병이 발생했다.
이 탈영병은 안동에서 걸어서 고향인 상주까지 갔으며 포대 선임하사가 상주에 가서 이 병사를 데려왔으나
얼마 후 또다시 탈영했고, 이 일이 세번 반복되자 대대장은 직결처분권으로 전부대원을 소집한 뒤 그 자리에서 총살형을 집행했다.
생후 처음보는 총살형 광경은 전 부대원들에게 적지 않은 심적 충격을 줬을테고 필자에게도 전쟁이 무엇인지 실감케 하는 엄숙한 장면이었다.
1951년 봄, 부대는 춘계공세로 동해안을 따라 북진, 설악산 기슭에서 잠시 전세를 가다듬고 중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보병부대 지원에 임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철의 삼각지로 알려진 철원/김화지구 735(m)고지 공방전에 참가했다.
이곳에서 우연히 필자와 종합학교9기 동기인 제2사단, 제32연대, 제2대대, 제7 중대장으로 735고지(일명 김일성고지) 방어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김영국 중위를 만났다.
당시 우리 포병대대는 제2사단 지원임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필자는 포병관측장교 로735고지 후방 제2대대 OP고지에서 보병대대장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포병지원 임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1951년 9월1일, 해가 저물자 중공군 1개연대 병력이 인해전술로 735고지를 향해 총공격을 가해 왔다. 공군과 포격지원이 어려운 야간전투에다 수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중공군은 김영국 중위가 지휘하는 7중대원 100여명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고지정상에까지 접근해왔다.
포병 관측이 불가능한 야간전투여서 필자는 지도상의 목표위치를 포진지에 전달하고 735고지 후방의 적침투지역을 강타하는 동시에 계속적인 조명탄 발사로 7중대 방어를 도왔다.
전세는 시시각각으로 불리해지고 있었으나 김영국 중대장의 직속상관인 제2대대장은 후퇴불가와 사수(死守)명령을 내렸으며 자정이 지나자 김 중위는 중공군 이 고지정상에까지 침투해 백병전이 전개되고 있음을 대대장에게 보고해왔다.
이윽고 김 중대장은 필자에게 모든 것을 단념한듯 “나와 중대원의 생사에 개의 치 말고735고지 정상에 일제 포사격을 해달라”는 최후 요청을 해왔다. 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장한 결단이었겠나!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필자 가슴 속에 파묻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잊지 못할 나의 전우
김영국 중위는 이 같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적진에 돌진,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필자는 지금도 가수 허성희가 부른 군가 ‘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애창곡으로 삼고 있다.
그후 김영국 중위에게는 각종 표창장, 무공훈장, 일계급특진 등 포상이 수여됐고 육군전사에 호국영웅으로 추대됐다.
필자는 1956년 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소령으로 예편과 동시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6년간 복무 중 9개부대를 전전했으며 도중에 미국 육군포병학교 파견 교육도 받고 대한민국 육군 포병확장과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했다.
전쟁 3년, 전후3년 등 6년간의 군생활은 필자에게 용기와 지혜를 심어 주었으며 국가 존망(國家存亡)의 위기상황에서 구국전선(救國聖戰)에 참여해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일조한 것은 필자의88년 생애에서 그 무엇보다 값지고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한 폐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6ㆍ25세대는 나름대로 나라를 위한 의무를 다했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길, 희비애락이 뒤섞인 과거사를 돌이켜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분단국 한반도는 아직도 불안하다. 이제 나라의 미래와 운명은 후세들의 손에 달려있으니 애국 애족정신 잊지 말고 대동단결할 것을 선임자의 한사람으로 간곡히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