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하 목사(오리건 벧엘장로교회 담임)
쓴 중년기가 달게 바뀌려면
인생의 중년기는 과연 몇 세에 해당할까요?
일반적으로 40-60세를 중년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중년기를 육체적인 나이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년기를
설명함에 있어 심리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심리는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고
목적지까지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마음 상태입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의
심리적 상태입니다. 아무리 광야 생활이 고단해도 이미 홍해를 건넜기 때문에 이젠 출발지인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목적지인 가나안 땅은 아직도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타 들어가는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근처 샘물을 마셨더니 써서 마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샘을 '마라' (뜻: 괴로움, 쓴 맛)로 정했습니다. 백성들이 마라에 왔을 때 불만스럽고 방황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가 중년기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민 생활이 기대처럼
만족스럽지 않아도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단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자녀의 상태가 아무리 후회스러워도
다시 양육할 수 없습니다.
위로는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아래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과연 나의 인생은 무엇인가?' 허탈감이 커집니다.
또한 나의 인생은 이미 모두 결정된 것 같아 그 동안 꿈꾸고 노력해 온 미래가 터진 거품처럼 느껴지면서 찾아오는
허무감과 실망감에 마음이 눌리는 것이 중년 심리의 위기입니다. 그 결과 중년기는 모든 연령을 통틀어
가장 자살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시편 기자도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시 102편 24절)"라고 부르짖으며 중년의 자살충동을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중년에는 성공을 위한 전력질주보다 정기적인 마음관리가 중요한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중년에 갑작스런 침체를 견디지 못해 하나님과
가족 앞에 돌이킬 수 없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할 가장 위험한 적은 '비교의식'입니다.
중년은 직장의 지위, 재산, 건강, 자녀의 성공 등에 있어 인생의 중간 성적표가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인생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성적표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평가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귀한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나는
상품이 아니라 70억 인구 중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퍼즐은 결코 나라는 한 조각이 빠지면 완성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나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예수님의 생명과 바꿀 만큼
소중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목숨 바쳐 사랑한 나를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광야의 마라의 샘에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지자 비로소 쓴 물은 단 물로 변했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신약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중년의
쓴 인생이 단 인생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가장 고귀한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감사가 차오르면서 동시에 비교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쓴 물이
단 물로 변하듯이 불평은 감사로, 의심은 신뢰로, 불안은
평안으로 바뀝니다. 중년의 위기는 오직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