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영 화가(S미술학원 원장)
뛰어난 예술성: 연약한 감수성
인상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에드와르 마네.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작가입니다.
그의 초기작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나 반면에 수많은 젊은 화가들의 지지를 받아 이들이 후에 인상주의를 이끌게 됩니다.
세기를 흔들은 명성의 작품들 속에서 알려지지 않은 그의 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이 작은 그림 한점 또한 그렇습니다.
보라빛 제비꽃 다발과 부채 그리고 ‘베르트양에게… 마네 드림’ 이라는 필체가 담긴 편지 등의 그림 속 소재만 보더라도 어떠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흐를것만 같은 강한 전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에드와르 마네는 시대를 앞선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인상파의 아버지입니다. 그런 그는 당대 스캔들 제조기라고 불리울만큼 인기와 명성이 대단했습니다.
같은 시대 속에 베르트 모리조 라는 19세기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가 있었습니다. 고위관리의 딸이었던 베르트 모리조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배웠으며. 그녀의 증조부 프라고나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리던 화가였고, 그녀의 언니 에드마 역시 화가였기 때문에 그녀도 자연스레 붓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이었기에 그녀는 밀레에게 영향을 줬던 카미유 코로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여성의 활동을 비하했던 그 시절이지만 에드와르 마네를 만나기 전, 모리조는 이미 살롱에 풍경화를 출품했을 정도로 어엿한 화가로 인정받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19세기 파리에서의 유명 화가라 하면 연예인급 인기를 몰고 다니던 시대입니다. 실력과 재력 그리고 외모에서 풍기는 매력까지 더해서 화가인 모리조는 파리의 사교계를 주름잡는 여인이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활동하던 때는 드가, 마네 등 인상파 화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시절이었으며 그녀 스스로 인상파에 속하기도 했던 모리조는 자연스레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을 나누게 됩니다.
그런 그녀가 유부남이였던 에드와르 마네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마네는 그런 그녀에게 작품의 모델을 부탁합니다.
결혼하지 않고 화가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베르트 모리조, 그녀는 개성이 강한 성격도 있어보입니다.
그런 그녀가 인상파 화가 에드워드 마네에게 끌리면서 이 두사람은 서로의 사랑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였고, 서로에게 '작품적 영감' 을 주며, 오랫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발전해온 두 인물입니다.
마네가 그린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는 부친상을 당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리조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마네는 그의 작품 속 초상화 모델을 이지적이고 차분하면서도 도발적인 분위기로 그려냅니다. 그가 가장 아끼던 그림이라고 합니다. 실제 영화로도 제작된 이 두사람의 관계는, ‘이룰 수 없는 로맨스’ 라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시대초월적 흥미?거리로 충분한 소재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정작 마네의 부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불륜적 사랑이야기가 ‘로맨스’ 라고 꾸며질때 그 로맨스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게 마련입니다.
마네의 부인은 마네가 어릴때 피아노를 가르치던 가정교사였으며 마네보다 3살 연상인 수잔 마네입니다. 거기다 수잔은 가정교사 당시 마네의 아버지의 정부였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 상류층 남성들이 정부를 두는 것은 가능했으며, 마네는 아버지의 정부를 사랑하였었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와 결혼한 것입니다.
이렇듯 사연 깊은 결혼을 겪은 유부남이였던 에드와르 마네는 모리조를 만나면서 그녀를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그녀를 그의 동생인 유진 마네에게 소개시키고 그들의 결혼까지 이루게 합니다.
모리조 또한 마네를 두고 보기 위해 그 결혼을 선택했으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유진과의 결혼 후에 그린 그림 속의 남편의 이미지가 더욱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베르트 모리조의 <유진 마네:Eugene Manet on the Isle of Wight> 1875
미술사조의 한 획을 그었던 에드와르 마네라기 보다 삼류연애소설의 흔한 줄거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실 것입니다.
에드와르 마네, 베르트 모리조, 그리고 유진 마네, 이 세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은밀하고 섬세한 감정의 대립과 연결, 그리고 애련과 갈망이 얼키고 설킨 생생한 삶의 장막을 보여주는 인생의 드라마적인 이야기입니다.
이 세 사람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얽혀진 가족들과의 관계들, 또 그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관계들... 시간이 흐르고 역사를 되돌아보는 입장에서는 단편적인 흐름만 집어내며 압축된 이야기로 감동과 감화를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시대속 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점검해가다보면 다양한 각도에서 삶의 애증과 사랑을 자세히 찾아갈 수 있습니다. 세대가 변함에 따라, 역사 속 상황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과거 역사 속에 던져져 있는 개개인의 그 감정들은 ‘그럴수도 있지, 이럴수도 있지..’ 등의 다른 해석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강하다는 것이 감정적인 나약함을 바탕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사랑’ 이라는 굴레를 쓴 두 여인을 향하는 에드와르 마네의 인생 속 선택이야말로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베르트 모리조 또한, 예술가적 자질과 남다른 개성으로 주목받던 여류화가로서 당당한 자신의 미래를 살아간다 다짐했었다지만, 마네라는 한 남성 앞에서 그녀의 꿈은 크나큰 반전을 보여준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네를 가까이 보기 원했던 그녀의 동기에 의해 진정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를 선택하고 결혼에까지 이릅니다.
만약에, 그녀의 인생에서 다른 선택이 이루어졌었더라면 어떠한 미술사적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각해봅니다.
한 인간의 역사적 업적이나 성공이 꼭 그 인간의 모든 면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수많은 인간적인 오류나 선택의 갈등과 그에 따른 결과는 한 인간의 감정 조절/절제 수준에 비례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개혁을 일으킨 작품들을 제작하며 인상파를 이끌어내던 예술적 리더로서의 에드와르 마네였지만, 그의 인생은 결국 자신의 감정에 끌려다닌 다소 수동적인 인간형임을 보여준다는 개인적 관점을 남겨봅니다.
권선영의 머리로 그리는 그림을 읽으시려면 아래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