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한글날이었다! 2013년에 다시 맞은 한글날은 감회가 새롭다. 한글날이 1991년 이후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23년 만에 재지정된 것이라고 한다.
워싱턴대학교(UW) 한국학도서관에서 10월에 준비한 ‘북:소리’책이 마침 한글에 관한 것이라서 한글날 축제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한글을 만든 원리』의 저자 김명호 씨는 뜻밖에도 한의학을 전공한 의학도이다. 자연과 사람의 이치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고 그 연장 선상에서 십여 년 동안『훈민정음』의 원리를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연구를 통해 발견하게 된 한글의 원리에는 음양오행에 기초한 한의학적인 통찰이 엿보인다.
비단 저자뿐만 아니라 『훈민정음』「해례(解例)」본 제자해(制字解)의
첫 문장을 읽는 누구든지 한글에 담긴 음양오행의 원리에 감탄하게 된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오직 음양오행이고
사람의 말소리에는 음양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말 속에서 한글 창제는 곧 자연의 이치를 따랐음을
서두에 확실히 밝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 하면
학창시절에 외웠던 ‘나랏말쌈이 뒹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세종대왕이 직접 쓴 것으로 잘 알려진 훈민정음의 어제(御製) 서문의
한 구절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어려운 한자어 대신 한글을
만들어 널리 사용되게 하라는 창제의 의도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가 자연의 원리인 음양오행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창문의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음양오행의 원리가
오롯이 한글에 담겨 있는 줄은 이 책을 통해서야 자세히 배우게 되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슬기와 지혜에 감탄
『훈민정음』「해례 (解例)」본이 1940년대에 겨우 발견되었다고 하니 그 동안 여러
가지 한글에 대한 창제설이 난무했을 법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흥미로웠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자연의 이치를 조화롭게 이용할 줄 알았던 옛 슬기와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적 우수성을 대표하는 일이다. 세계의 많은 학자도 한글은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고 읽고 쓰기 쉬운 문자라고 익히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을 쓰는 우리는 그 원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니 저자의 설명을 간추려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한글은 일단 배우기에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음소 문자이기에 음절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뉘어 기본 24개의
자음 기호와 모음 기호를 배우고 나면 읽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 알파벳이 26개의 기호로 되어 있어 비교적 훌륭한 문자 편에 속한다고 하지만, 자음과
모음이 원칙없이 섞여 있어서 문자를 배우는 초기 단계에서 기호를 구분해서 인식하는 데 한글처럼 쉽지는 않다.
뜻 문자인 중국 문자를 배우려면 3,000개 이상의
일상에서 필요한 문자를 외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일본 문자도 중국 문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로
구성되어 있고 일본어로 중국 문자를 읽는 방법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에 각각 질서와 체계가 있어
둘째로, 음소 문자의 체계성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찾을
수 있다. 알파벳도 음소 문자이지만 자음과 모음에 뚜렷한 체계는 없다. 반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각각의 질서와 체계가 있다. 심지어
기호의 모양에서도 체계가 있다.
모음의 예를 먼저 들어보자. 소리 가운데 가장 기본인
소리 ‘ㅡ’는 평면을 상하로 가르는 가로줄 기호이고, 평면을 좌우로 나누는 소리에 ‘ㅣ’ 세로줄 기호가 있다. 사람이 자연 현상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한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모음‘ㅗ’와 ‘ㅜ’ 가
짝을 이루고, 또한 ‘ㅏ’와 ‘ㅓ’가 짝을
이룬다. 기본 모음에서 점차 복잡한 모음으로 짝을 이루어 만들어졌다.
자음의 예에서도 체계 음소 문자로서의 특징이 아주 두드러진다. 한글에서
사용되는 자음 기호는 모두 19개인데 이 자음 기호들은 모양에 의한 체계를 이루며 6가지로 분류된다.
‘ㄱ ㅋ ㄲ’은 ‘ㄱ’의 모양을 기본으로 하고 ‘ㄴ ㄷ ㅌ ㄸ’는 ‘ㄴ’을 ‘ㅁ ㅂ ㅍ ㅃ’는 ‘ㅁ’을 ‘ㅅ
ㅈ ㅊ ㅆ ㅉ’는 ‘ㅅ’, 마지막으로 ‘ㅇ ㅎ’은 ‘ㅇ’의 모양을
각기 공유한다. 혼자인‘ㄹ’을 제외하면 공유하는 모양은 ‘ㄱ,ㄴ,ㅁ,ㅅ,ㅇ’ 5가지다.
재미있는 현상 중의 하나는 똑같은 기호를 나란히 쓴 ‘ㄲ, ㄸ, ㅃ, ㅆ, ㅉ’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기본 기호에다 획을 하나나 두
개 더 그은 것들이다. 자음 기호를 만든 데에도 나름의 제자(制字)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모음에는 자연의 이치인 낮과 밤
자음에는 계절을 따라 소리가 나
이러한 체계 속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모음에는
자연의 이치인 낮과 밤을 따라 기본 모음 ‘ㅡ’외에
낮 소리 (ㅏ,ㅑ,ㅗ,ㅛ)와 밤 소리 (ㅓ,ㅕ,ㅜ,ㅠ), 그리고 사람 소리 (ㅣ)로 구분했다.
자음에도 자연의 이치인 계절을 따라 소리가 나는 비슷한 위치에 따라 봄 소리 (ㄱ,ㅋ), 여름
소리 (ㄴ,ㄷ,ㅌ), 끝여름 소리 (ㅁ,ㅂ,ㅍ), 가을
소리 (ㅅ,ㅈ,ㅊ), 겨울 소리 (ㅇ,ㅎ)로 나뉜다.
저자 김명호 씨는 훈민정음에 기반을 둔 한글의 체계성을 다루면서 글자의 순서 또한 훈민정음에 있는 순서대로
재정비해서 쓰는 것이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배우기에도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훈민정음에 있는 자음의 소리 순서는 현재 「한글 맞춤법」에 규정된 ‘ㄱ,ㄴ,ㄷ,ㄹ’의 순서가 아니라 ‘ㄱ,ㅋ,ㄴ,ㄷ,ㅌ’순으로 위의 계절별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에 맞춘 체계별이다.
「한글 맞춤법」의 근거가 된 「훈몽자회」가 『훈민정음』을 직접 참조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하면서 ‘한글을 만든 순서’도 한글을 만든 원리에 따라 바꾸어서
국어 교과서에 반영해야 함을 이 책에서 논하고 있다.
한글날을 맞이해 한글을 만든 원리를 다시 조명해 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런
우수한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이 있다. 한글을 사용함에도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입혀 보자. 아름다운 말과 글로 자연의 이치를 닮은 한글의 품격은 나날이
더 높아질 것이다.
**참고로 이번주
토요일인 12일 토요일 오후 1시에 UW 의 Allen Library내의 Allen Auditorium에서 UW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계신 김수희 교수님을 모시고 ‘북:소리’행사가 열립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