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6월6일 현충일과 6ㆍ25사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5월이 지나면서 개나리ㆍ 철쭉꽃들은 모두 떨어지고 풍성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우짖는 새들의 지저귐이 한창인 6월이다.
6월이 우리 조국의 산과 냇가, 그리고 풀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산천초목의 계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6월 6일 현충일과 6ㆍ25가
들어 있는 달이기 때문일 게다.
동족 상잔인 6ㆍ25 사변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온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눈을 감았던가. 때문에 6ㆍ25는 잊을 수도 없고, 더더욱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만 한다.
올해로 61회를 맞은 현충일은 조국의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을 해마다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전쟁(1950년 6월25일~1953년7월 27일)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여 발발한 동난(動亂)으로 유엔군과 중국 인민군들이 참전하여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할뻔했던 전쟁으로 ‘6ㆍ25 사변’이라고도 부른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 휴전 협상에 따라 다행히 일단락됐다.
필자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관계로 6ㆍ25사변이 일어난
배경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북한은 6ㆍ25사변 직전 그들이 구금하고 있던 조만식 선생과 남한에서 간첩활동을 하다 체포된 김상룡, 이주하를 서로 교환하자고 남한에 먼저 제의했다. 하지만 이것은 6ㆍ25 남침을 은폐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것은 남침을 노린 전초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구상에는 많은 종류의 전쟁이 있었고 우리는 그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간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정말로 ‘전쟁’이라 불리는 것으로 국가와 국가간 선전포고를
기화로 서로 싸우는 물리적인 전쟁을 의미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는 선전포고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전쟁을 말한다. 1937년7월7일에 있었던 지나사변(地那事變)이
좋은 예다. 일본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를 점령하고 수도 난징에서 수십만 명을 살육하는 난징 학살을
자행했다. 일본이 제2차 대전 당시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을 상대로 감행했던 ‘진주만 공격(Attack on Pearl Harbor)’도 같은 예다.
일본 해군
전투기들이 1941년 12월 7일 하와이주 오아후섬 진주만에 있는 미군 기지에 가한 기습공격으로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됐으며 2,403명의
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셋째는 정변(政變)을 뜻하는 ‘Coup d'Etat’로 불어에서 유래된 낱말로, 영어로는 ‘쿠(Coup)’라고 하는 쿠데타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 일을 통상적으로 지칭한다.
한국은 1961년 5월16일 폭력적으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가운데 선전포고도 없이 북한이 일방적으로 침략했던 6ㆍ25
사변은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침략이 확인되자마자 UN헌장에 의거 신속하게 대응조치를 취함에
따라 그나마 빨리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안보리 이사국은11개국으로 소련(현 러시아)이 들어 있었는데
소련 대표가 UN으로 가던 중 차 사고가 나서 안보리에 늦게 도착했다.
UN군을 참전시키기로 결정이 끝난 뒤였다. 만일 그때 소련 대표가 늦게 오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얼마나 잊으려야 잊을 수 없고 감사한 일인가.
제 61회 현충일과 6ㆍ25 사변 66회를 맞이해 전쟁을 생각하며 한국전쟁때 희생된 국군과 UN군을 포함한 18만8,670명
장병들의 영령에 깊은 추모를 보낸다.